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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야구 경쟁심이 성적 끌어올렸다, 1962년 장훈 히로시마 고향집 떠올린 오 사다하루, 1940년생 동갑내기 야구 동지 추모하며 &#…

관리자 각티비 2026-09-11 13:19 15 0
6500969_1_ba17a3a4.webp오 사다하루(왕정치)와 장훈. 둘은 요미우리 중심타자로 1976~1977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해설가 장훈이 요미우리 감독이던 오 사다하루와 경기 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사진출처=스포츠호치6500969_2_944a4401.webp재일교포 레전드 장훈과 선동열. 장훈은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에 공헌했다. 연합뉴스6500969_3_81a85011.webp장훈은 1959년 도에이에 입단해 요미우리, 롯데에서 총 23시즌을 활약했다. 연합뉴스"갑작스러운 일에 깜짝 놀랐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못해 아쉽지만 조용히 쉬었으면 좋겠다."

일본프로야구를 환하게 빛낸 별이 졌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 사다하루(왕정치) 회장은 "가슴을 펴고 천국에 가길 바란다"라고 추모했다. 9일 별세한 재일교포 야구인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은 야구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지였다. 일본프로야구 최다 홈런을 기록한 오 사다하루에게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인 장훈이 특별한 존재였다.

오 사다하루는 언론 인터뷰에서 1962년 히로시마에 열린 올스타전 얘기를 꺼냈다. 장훈이 "히로시마에 오면 우리집에 머물라"라고 제안했다. 장훈의 고향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차려준 식사를 했다. 가족 전체가 어울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오 사다하루는 장훈을 화상으로 인한 장애를 의지로 이겨낸 강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둘은 1940년생 동갑내기다. 고교를 졸업하고 1959년 나란히 프로 선수가 됐다. 고교시절엔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장훈은 도에이 플라이어스(니혼햄 파이터스 전신)에서 시작했다. 오 사다하루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팀도 리그도 달랐다. 오 사다하루는 "동갑내기인데 대단하고 생각했다. 자이언츠 선수보다 더 과감하게 플레이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했다.

프로 첫해, 장훈이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125경기에 나가 타율 0.275-115안타-13홈런-57타점을 올렸다. 퍼시픽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입단 3년차에 타격, 장타율 1위를 했다. 이듬해인 1962년, 도에이를 창단 첫 리그, 재팬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MVP를 수상했다.

그는 이후 요미우리, 롯데 오리온스(지바 롯데 마린즈 전신)에서 23시즌을 뛰었다. 2752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19-3085안타-504홈런-1676타점-319도루를 기록했다. 30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 최다 기록이다. 그는 정확한 타격에 장타력, 빠른 발까지 갖춘 최고 타자였다. 7차6500969_4_3f0f188b.webp연합뉴스6500969_5_35d070b1.webp연합뉴스례 타격왕에 올랐고, 16차례 베스트9에 올랐다.

오 사다하루는 1962년, 38홈런을 터트려 첫 타이틀을 차지했다. 1962년부터 1974년까지 13년 연속 홈런왕을 했다. 그는 요미우리에서 22시즌을 뛰면서 15번 홈런왕에 올랐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통산 '868홈런'을 날렸다.

1976년, 30대 후반이 된 장훈이 오 사다하루의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해 확정됐는데 갑자기 요미우리로 방향을 틀었다. 4번 오 사다하루-3번 하리모토(장훈), 'OH 타선'이 위력을 발휘했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취임 첫해 꼴찌로 떨어졌던 요미우리가 벌떡 일어났다. 1976~1977년 연속 우승을 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요미우리 이적 첫해 타율 0.355-182안타를 올렸다. 그해 오 사다하루는 49홈런-123타점를 기록했다. 장훈은 안타-루타수 1위, 오 사다하루는 홈런-타점 1위를 했다.

오 사다하루는 장훈과 서로 경쟁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서로 자극을 주는 경쟁심이 성적을 올렸다. 오랜 시간 선수 생활로 이어진 원동력이 됐다. 장훈이 오 사다하루보다 한 시즌을 더 뛰었다.

선수 은퇴 후 두 레전드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오 사다하루는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감독을 거쳐 소프트뱅크 구단 회장으로 있다. 소프트뱅크6500969_6_ebd66fad.webp연합뉴스를 퍼시픽리그 맹주로 인도했다. 그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대표팀 감독으로 1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장훈은 전업 지도자가 아닌 해설가로 남았다. 롯데, 니혼햄이 총 4차례 감독 제안이 있었지만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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