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각티비

스포츠 뉴스

해외야구 日야구 개척자→전설의 잇단 별세 "앗파레!" 장애와 차별, "그 어떤 장벽도 그를 막지 못했다�…

관리자 각티비 2026-09-11 08:17 12 0
6489644_1_11cce88f.webp일본야구를 호령했던 두 한국인 거물이 2026년 차례로 영면했다. 1991년 부산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만난 LG 백인천 감독과 장훈(오른쪽).[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오른손 화상 장애와 피폭, 재일교포 차별 등 모든 장벽을 의지로 극복한 '불멸의 3085안타'의 주인공.

일본 프로야구(NPB) 역사상 유일하게 3000안타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재일교포 야구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일본프로야구 타격왕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의 개척자이자 KBO '불멸의 4할타자' 백인천 전 감독의 별세(지난달 15일)에 이은 잇단 비보.

고인은 신체적 장애와 시대의 차별이라는 이중의 장벽을 오직 타격에 대한 집념과 강인한 의지로 돌파해 낸 인물이었다.

부고가 전해지자 일본 현지 매체와 야구계 거장들은 일제히 경의를 표하며 전설의 마지막 길을 추모하고 있다.6489644_2_7b1efb50.webp지난 2017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 앞서 선동열 당시 대표팀 감독과 인사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신체적 장애와 차별을 넘어선 타격의 신"

일본의 유수 언론들은 고인의 보도 소식을 톱뉴스로 전하며, 야구선수로서의 위대한 성적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증명해 낸 삶의 궤적에 집중했다.

교도통신 및 주요 일간지는 "오른손 손가락 장애와 히로시마 원폭 피폭이라는 비극, 재일교포로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차별을 이겨낸 불굴의 거인"이라고 평하며, 통산 3085안타, 504홈런, 7회 타격왕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숭고한 가치를 조명했다.

특히 한국 국적을 끝까지 지켜내면서도 일본 야구의 정점에 선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집중 조명했다.

TBS 및 방송계 약 30년간 인기 시사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의 호통 해설자로 활약하며 대중적 사랑을 받은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방송사는 공식 추모를 통해 "격려와 칭찬의 대명사였던 '앗파레!(잘했다,장하다)'를 이제는 우리가 고인에게 감사함과 경의를 담아 천국으로 보낸다"는 메시지를 전했다.6489644_3_f53c3811.webp1980년 5월 28일 롯데 오리온스 선수로 출전해 한큐전에서 3천안타를 달성해 기뻐하는 장훈. 연합6489644_4_68415bfd.webp1971년 5월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 구단(현 닛폰햄 파이터스) 선수로 뛰던 장훈. 연합▶"그의 강한 오기가 우리를 키웠다"

고인과 동시대를 누볐던 라이벌부터 그를 경외했던 후배 스타들까지, 일본 야구계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왕정치(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OH 포'로 전성기를 이끌었던 동갑내기 친구의 영면에 애통함을 드러냈다.

그는 "오른손 손가락 장애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도 3000안타라는 신화적인 대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지기 싫어하는 강한 오기와 라이벌 의식이 나를 함께 성장시켰다. 가장 자랑스러운 친구였으니, 하늘에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기를 바란다"고 추모했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회장 특별보좌관은 미·일 통산 기록 경신 당시에도 늘 "장훈 선배의 NPB 3085안타야말로 진짜 금자탑"이라며 존경을 표했던 인물. 그는 "해리(장훈 선생의 애칭),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엄숙하게 추모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대스타 사카모토 하야토는 "현장과 방송에서 항상 제게 뜨거운 호통(카츠)과 아낌없는 칭찬(앗파레)으로 힘을 주셨던 분"이라며 "고인이 남긴 3000안타라는 대기록의 무게감을 가슴에 품고 타석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6489644_5_8e50bf68.webp지난 2009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한국과 대만의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 장훈. 연합▶장벽을 무너뜨린 영웅의 유산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어버린 장애를 입고, 왼손 타자로 전향해 피나는 노력 끝에 '안타 제조기'가 된 장훈.

귀화 유혹과 갖은 차별 속에서도 당당히 '한국인 장훈'으로서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은퇴 후에도 한국 프로야구(KBO) 출범의 기틀을 마련하고 재일교포 선수들의 한국 진출을 돕는 등 한일 양국 야구를 잇는 다리가 됐다.

장애도, 차별도, 시대의 비극도 그 그라운드 위의 집념을 막아서지 못했다. 일본 현지 매체와 야구계는 그가 남긴 3085개의 안타보다, 그 안타 하나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거쳤던 '불굴의 삶'의 과정에 뜨거운 '앗파레!'를 보내고 있다.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