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실력으로 편견 날려버렸다 … 日야구계 전설 장훈 별세
재일교포 출신, 차별 시달려
원폭 화상으로 오른손 장애
통산 최다 3085안타 기록
타격왕 7회·日야구전당 헌액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 장훈 해설위원. 연합뉴스

일본프로야구 전설이자 재일교포 야구 영웅인 장훈 해설위원(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로 구성된 명구회는 "장 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10일 전했다. 지난달 15일 별세한 고(故) 백인천 전 감독에 대해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며 추모했던 고인은 그로부터 채 한 달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1940년 재일교포 2세로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시즌 동안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했다. 통산 2752경기에 출전해 터트린 30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 최다 안타 기록으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통산 3000안타 기록 자체도 일본프로야구 역사에서는 그가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1959년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했던 고인은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1976년 요미우리로 이적한 뒤에는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공포의 O·H 타선을 구축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통산 타율 0.319(역대 3위), 504홈런, 1676타점 등을 기록하고 7차례 타격왕을 달성했던 고인은 1981년 롯데 오리온스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현역 시절 일본프로야구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0년 일본 야구계 '명예의 전당'인 '야구전당'에 헌액됐다. 어린 시절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에 따른 화상으로 오른손 장애를 입었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일본프로야구 스타로 맹활약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고인은 선수 은퇴 후 지도자가 되는 대신 일본 TBS에서 1982년부터 해설위원으로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특히 한국프로야구, 한국 스포츠계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했다. 고인은 다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오랜 기간 한국 국적을 이어왔던 고인은 2024년 말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실을 밝혔다.
[김지한 기자]
원폭 화상으로 오른손 장애
통산 최다 3085안타 기록
타격왕 7회·日야구전당 헌액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 장훈 해설위원. 연합뉴스

일본프로야구 전설이자 재일교포 야구 영웅인 장훈 해설위원(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로 구성된 명구회는 "장 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10일 전했다. 지난달 15일 별세한 고(故) 백인천 전 감독에 대해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며 추모했던 고인은 그로부터 채 한 달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1940년 재일교포 2세로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시즌 동안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했다. 통산 2752경기에 출전해 터트린 30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 최다 안타 기록으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통산 3000안타 기록 자체도 일본프로야구 역사에서는 그가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1959년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했던 고인은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1976년 요미우리로 이적한 뒤에는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공포의 O·H 타선을 구축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통산 타율 0.319(역대 3위), 504홈런, 1676타점 등을 기록하고 7차례 타격왕을 달성했던 고인은 1981년 롯데 오리온스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현역 시절 일본프로야구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0년 일본 야구계 '명예의 전당'인 '야구전당'에 헌액됐다. 어린 시절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에 따른 화상으로 오른손 장애를 입었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일본프로야구 스타로 맹활약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고인은 선수 은퇴 후 지도자가 되는 대신 일본 TBS에서 1982년부터 해설위원으로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특히 한국프로야구, 한국 스포츠계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했다. 고인은 다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오랜 기간 한국 국적을 이어왔던 고인은 2024년 말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실을 밝혔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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