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나라 버릴 바엔 야구 마라"... 3천 안타 장훈의 극적인 인생
조센징 하리모토와 원폭으로 죽은 누나의 얼굴... 장훈 선수의 명복을 빌며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197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장훈.ⓒ 연합뉴스
장훈 하리모토 안녕히
어렸을 때 코 박고 봤던 만화 중 상당수 소재는 재일 조선인들이었다. 차별받으면서도 민족혼(?)을 잃지 않고 압도적인 무력 또는 지력(智力)으로 거만한 일본인들의 콧대를 꺾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클리셰가 꽤 지겨울 만큼 반복됐었다. 한국 만화의 고전이 된 박기정의 <도전자> 주인공이 재일교포 복서였고, 이현세가 '까치' 캐릭터를 세상에 알린 것은 <시모노세키의 까치>를 통해서였다. 먼훗날 이현세의 야심작 <남벌>의 주인공도 재일교포였고,이상무의 <현해탄 너머>에는 재일교포 형제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로 어느 주간 스포츠 잡지에 연재된 것이 허영만의 <조센징 하리모토>였다(내 기억은 그러한데 단행본으로는 <질수 없다>가 나왔다. 나의 기억 오류일 수도 있겠다).
3천 안타 장훈의 이야기는 당시에 유명했으니 그 인기를 활용한 프로젝트였으리라. 몇 편 보지는 못했으나 그 만화에서 나는 장훈이라는 선수의 일면을 처절하게 알 수 있었다. 어려서 화상을 입어 붙어버린 손가락을 극복하기 위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변신해야 했던 사정, 온갖 차별과 폭력을 견디며 야구 선수로 성장하고자 노력했으나 폭력을 휘둘렀다는 누명을 쓰고 일본 고교생들의 '꿈의 구연' 고시엔 출전을 좌절당했던 사연 그리고 마침내 프로야구단에 입단하게 됐을 때 국적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나라를 버리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 야구 그만 둬라"라고 결연하게 말하던 어머니의 꽉 다문 입술.
그 이후의 만화 내용은 보지 못했다. 어디까지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하의 허영만 화백이라 하더라도 극화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워낙 그 사연의 기암괴석이 공룡능선처럼 펼쳐져 있어서 몇 권짜리 대하 드라마를 그려야 할지 모를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어려서 만화를 볼 때도 나는 "나라를 버리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라던 어머니 모습이 약간의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머니, 형 그리고 죽은 누나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글자를 전혀 배우지 못해 벽에다가 금을 그어 가며 외상을 하고 돈을 셈하면서 아들을 뒷바라지 했던 어머니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뿐인가. 그 형은 택시 기사 하며 번 돈의 30%를 무조건 장훈에게 보냈다. 그렇게 공들여 야구 선수가 되려는 참에 "나라 버리려면 야구 그만 둬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강단을 나는 무슨 '민족혼'으로는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건 오기였다고 생각한다. 장훈의 어머니에게도 그 이후의 장훈에게도 비수처럼 깊숙이 가슴에 담겨 있었던.
장훈은 거친 사람이었다. 가족끼리의 무용담에 따르면 누나를 희롱한 야쿠자를 방망이로 반 죽여 놓았다고도 한다(믿거나 말거나). 후배들에게는 쳐다보기도 무서운 선배였고, 벤치클리어링 같은 것이 나면 상대편 선수보다 성난 장훈을 먼저 붙들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거칠지 않고 어찌 배겨냈을까. 오른손을 제대로 못 쓰니 왼손에 악으로 깡으로 힘을 불어넣었고, 뭐 해준 것도 없는 나라 국적을 위해 평생 한 야구를 걸어야 했고, 오로지 실력 하나만 가지고 그 험난한 일본 프로야구판을 견뎌야 했다면 나 같은 비단결도 사포면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왕정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할 때 그는 'OH포'로 주가를 함께 올렸다. O는 오 사다하루(왕정치)였고 H는 하리모토, 즉 장훈이었다. 중국계 혼혈과 재일 한국인 주포 두 문이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원투펀치였던 셈이다. 둘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친했다고 한다. 왕정치가 행크 에런의 홈런 기록을 깨는 756호 홈런을 날렸을 때 날아오를 듯 환호한 게 장훈이었고 장훈이 3천 안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방출되려 할 때 감독에게 통사정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는 설도) 장훈의 잔류를 요청한 것은 왕정치였다.
결국 장훈은 롯데 오리온스로 옮겨서 마침내 3천 안타를 달성하게 된다. 그 순간은 한국 TV의 롯데 오렌지 주스 광고에 실려서 나도 지겹게 보았다. 영화 같은 장면 하나는 그 대망의 3천 안타는 홈런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자리에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적을 바꾸느니 야구를 하지 마라"라고 일갈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3천 안타를 열 개 남겨 뒀을 때 동그라미 열 개를 그리고 안타를 칠 때마다 그 안을 빽빽이 채워 나갔다고 한다. 마침내 열 개 모두가 채워졌을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장훈 인생 극적인 순간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1980년 5월 28일 롯데 오리온스 선수로 출전해 한큐전에서 3천 안타를 달성해 기뻐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
장훈 가족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있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장훈의 집도 폭발에 휘말렸다. 온 집의 유리창이 깨져 나가는 가운데 어머니가 가족들을 덮쳐 그 파편을 몸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근로동원 나갔던 누나 점자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집에 돌아왔으나 며칠 살지 못했다. 온몸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누나는 목이 마르다고 호소했지만 물을 줄 수 없었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물은 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 독이었고 실제로 피폭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죽었다. 장훈의 가족들은 죽어가는 누나에게 포도알을 으깨 흘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포도알 몇 개도 채 먹지 못하고 죽어갔다. 어머니는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장훈과 함께 집어 들던 그날의 포도알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장훈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면 3천 안타를 치는 순간도,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한 뒤 고향 히로시마로 돌아와 왕년의 담임 선생님부터 친구들, 심지어 첫사랑 여자까지 초대해서 홈런을 날리던 순간도 아닐 것 같다. 야구 스타로서가 아니라 격동의 20세기, 식민지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았던 한 한국인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은 누나의 얼굴을 수십 년 만에 대면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누나 점자가 죽은 후 가족들은 그 모든 유품을 버렸다. 사진이 귀할 때였으니 몇 장 있지도 않았겠지만 그 사진마저 깡그리 치워 버렸다.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에 온몸이 문드러지고 속이 녹아서 죽어 버린 가련한 가족의 기억을 하시라도 빨리 지우고 싶었으리라. 장훈에게 누나의 얼굴은 그저 어렴풋한 기억 속에만 있었다.
2010년 장훈은 <장훈, 또 하나의 인생―피폭자로서, 인간으로서 張本勲 もう一つの人生―被爆者として、人として>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을 본 독자가 출판사로 연락을 해 온다. "아는 사람의 누나가 점자와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도 그 단체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점자 누나의 얼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는 출판사 직원의 수화기 저편에서 장훈, 하리모토는 울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69년 만에 누나의 얼굴을 다시 만난다. 어머니 묘소에 그 사진을 들고 간다. "어머니 69년 만에 한 번 딸 얼굴 보십시오."
영화 같지 않은 인생은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극적이고 삶의 궤적으로 드라마를 쓴다. 그런데 그 영화와 드라마에도 품질이 존재하고 격조가 엄연하며 재미와 스펙타클, 서스펜의 간극은 무한대로 넓다. 장훈의 인생 같은 영화는 어느 지점에 둘 수 있을까. 격동의 시대에 살았던 범상치 않은 오기, 원자폭탄이라는 인류사의 한 페이지, 시퍼렇게 날 선 그 페이지의 종잇날에 수만 명이 베어져 나가던 도시의 어린아이가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이 되고, 그 전설 속에서 다시 누나의 얼굴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영화로 그릴 만한 작가, 감독이 과연 있을까. 있기를 바라지만 없으리라 기대해 본다. 뭘 만들기에도, 뭘 표현하기에도 벅찬 인생임은 분명하므로.
장훈 하리모토. 조센징이자 강코쿠징. 나이 들어서 거침없이 말해서 주변 사람들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조차 꼭 한국 노인이었던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의 명복을 빈다. 향년 86세. 카오스의 시간이었다.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장훈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197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장훈.ⓒ 연합뉴스장훈 하리모토 안녕히
어렸을 때 코 박고 봤던 만화 중 상당수 소재는 재일 조선인들이었다. 차별받으면서도 민족혼(?)을 잃지 않고 압도적인 무력 또는 지력(智力)으로 거만한 일본인들의 콧대를 꺾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클리셰가 꽤 지겨울 만큼 반복됐었다. 한국 만화의 고전이 된 박기정의 <도전자> 주인공이 재일교포 복서였고, 이현세가 '까치' 캐릭터를 세상에 알린 것은 <시모노세키의 까치>를 통해서였다. 먼훗날 이현세의 야심작 <남벌>의 주인공도 재일교포였고,이상무의 <현해탄 너머>에는 재일교포 형제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로 어느 주간 스포츠 잡지에 연재된 것이 허영만의 <조센징 하리모토>였다(내 기억은 그러한데 단행본으로는 <질수 없다>가 나왔다. 나의 기억 오류일 수도 있겠다).
3천 안타 장훈의 이야기는 당시에 유명했으니 그 인기를 활용한 프로젝트였으리라. 몇 편 보지는 못했으나 그 만화에서 나는 장훈이라는 선수의 일면을 처절하게 알 수 있었다. 어려서 화상을 입어 붙어버린 손가락을 극복하기 위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변신해야 했던 사정, 온갖 차별과 폭력을 견디며 야구 선수로 성장하고자 노력했으나 폭력을 휘둘렀다는 누명을 쓰고 일본 고교생들의 '꿈의 구연' 고시엔 출전을 좌절당했던 사연 그리고 마침내 프로야구단에 입단하게 됐을 때 국적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나라를 버리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 야구 그만 둬라"라고 결연하게 말하던 어머니의 꽉 다문 입술.
그 이후의 만화 내용은 보지 못했다. 어디까지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하의 허영만 화백이라 하더라도 극화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워낙 그 사연의 기암괴석이 공룡능선처럼 펼쳐져 있어서 몇 권짜리 대하 드라마를 그려야 할지 모를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어려서 만화를 볼 때도 나는 "나라를 버리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라던 어머니 모습이 약간의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머니, 형 그리고 죽은 누나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글자를 전혀 배우지 못해 벽에다가 금을 그어 가며 외상을 하고 돈을 셈하면서 아들을 뒷바라지 했던 어머니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뿐인가. 그 형은 택시 기사 하며 번 돈의 30%를 무조건 장훈에게 보냈다. 그렇게 공들여 야구 선수가 되려는 참에 "나라 버리려면 야구 그만 둬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강단을 나는 무슨 '민족혼'으로는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건 오기였다고 생각한다. 장훈의 어머니에게도 그 이후의 장훈에게도 비수처럼 깊숙이 가슴에 담겨 있었던.
장훈은 거친 사람이었다. 가족끼리의 무용담에 따르면 누나를 희롱한 야쿠자를 방망이로 반 죽여 놓았다고도 한다(믿거나 말거나). 후배들에게는 쳐다보기도 무서운 선배였고, 벤치클리어링 같은 것이 나면 상대편 선수보다 성난 장훈을 먼저 붙들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거칠지 않고 어찌 배겨냈을까. 오른손을 제대로 못 쓰니 왼손에 악으로 깡으로 힘을 불어넣었고, 뭐 해준 것도 없는 나라 국적을 위해 평생 한 야구를 걸어야 했고, 오로지 실력 하나만 가지고 그 험난한 일본 프로야구판을 견뎌야 했다면 나 같은 비단결도 사포면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왕정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할 때 그는 'OH포'로 주가를 함께 올렸다. O는 오 사다하루(왕정치)였고 H는 하리모토, 즉 장훈이었다. 중국계 혼혈과 재일 한국인 주포 두 문이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원투펀치였던 셈이다. 둘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친했다고 한다. 왕정치가 행크 에런의 홈런 기록을 깨는 756호 홈런을 날렸을 때 날아오를 듯 환호한 게 장훈이었고 장훈이 3천 안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방출되려 할 때 감독에게 통사정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는 설도) 장훈의 잔류를 요청한 것은 왕정치였다.
결국 장훈은 롯데 오리온스로 옮겨서 마침내 3천 안타를 달성하게 된다. 그 순간은 한국 TV의 롯데 오렌지 주스 광고에 실려서 나도 지겹게 보았다. 영화 같은 장면 하나는 그 대망의 3천 안타는 홈런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자리에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적을 바꾸느니 야구를 하지 마라"라고 일갈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3천 안타를 열 개 남겨 뒀을 때 동그라미 열 개를 그리고 안타를 칠 때마다 그 안을 빽빽이 채워 나갔다고 한다. 마침내 열 개 모두가 채워졌을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장훈 인생 극적인 순간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1980년 5월 28일 롯데 오리온스 선수로 출전해 한큐전에서 3천 안타를 달성해 기뻐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장훈 가족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있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장훈의 집도 폭발에 휘말렸다. 온 집의 유리창이 깨져 나가는 가운데 어머니가 가족들을 덮쳐 그 파편을 몸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근로동원 나갔던 누나 점자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집에 돌아왔으나 며칠 살지 못했다. 온몸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누나는 목이 마르다고 호소했지만 물을 줄 수 없었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물은 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 독이었고 실제로 피폭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죽었다. 장훈의 가족들은 죽어가는 누나에게 포도알을 으깨 흘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포도알 몇 개도 채 먹지 못하고 죽어갔다. 어머니는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장훈과 함께 집어 들던 그날의 포도알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장훈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면 3천 안타를 치는 순간도,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한 뒤 고향 히로시마로 돌아와 왕년의 담임 선생님부터 친구들, 심지어 첫사랑 여자까지 초대해서 홈런을 날리던 순간도 아닐 것 같다. 야구 스타로서가 아니라 격동의 20세기, 식민지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았던 한 한국인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은 누나의 얼굴을 수십 년 만에 대면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누나 점자가 죽은 후 가족들은 그 모든 유품을 버렸다. 사진이 귀할 때였으니 몇 장 있지도 않았겠지만 그 사진마저 깡그리 치워 버렸다.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에 온몸이 문드러지고 속이 녹아서 죽어 버린 가련한 가족의 기억을 하시라도 빨리 지우고 싶었으리라. 장훈에게 누나의 얼굴은 그저 어렴풋한 기억 속에만 있었다.
2010년 장훈은 <장훈, 또 하나의 인생―피폭자로서, 인간으로서 張本勲 もう一つの人生―被爆者として、人として>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을 본 독자가 출판사로 연락을 해 온다. "아는 사람의 누나가 점자와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도 그 단체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점자 누나의 얼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는 출판사 직원의 수화기 저편에서 장훈, 하리모토는 울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69년 만에 누나의 얼굴을 다시 만난다. 어머니 묘소에 그 사진을 들고 간다. "어머니 69년 만에 한 번 딸 얼굴 보십시오."
영화 같지 않은 인생은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극적이고 삶의 궤적으로 드라마를 쓴다. 그런데 그 영화와 드라마에도 품질이 존재하고 격조가 엄연하며 재미와 스펙타클, 서스펜의 간극은 무한대로 넓다. 장훈의 인생 같은 영화는 어느 지점에 둘 수 있을까. 격동의 시대에 살았던 범상치 않은 오기, 원자폭탄이라는 인류사의 한 페이지, 시퍼렇게 날 선 그 페이지의 종잇날에 수만 명이 베어져 나가던 도시의 어린아이가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이 되고, 그 전설 속에서 다시 누나의 얼굴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영화로 그릴 만한 작가, 감독이 과연 있을까. 있기를 바라지만 없으리라 기대해 본다. 뭘 만들기에도, 뭘 표현하기에도 벅찬 인생임은 분명하므로.
장훈 하리모토. 조센징이자 강코쿠징. 나이 들어서 거침없이 말해서 주변 사람들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조차 꼭 한국 노인이었던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의 명복을 빈다. 향년 86세. 카오스의 시간이었다.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장훈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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