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안타 제조기' 장훈 별세…日 프로야구 전설, 3085안타 남기고 떠났다
NPB 최초·유일 3000안타 기록
23시즌 타율 0.319·504홈런
원폭·오른손 장애 딛고 정상 올라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도 힘 보태일본프로야구(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재일 교포 출신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10일 연합뉴스는 일본 TBS와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 등을 인용해 장훈이 지난 9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일본프로야구 명구회는 장훈에 대해 "압도적인 타격 성적과 야구를 대하는 엄격한 자세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며 "은퇴 후에도 야구 해설자와 평론가로 오랜 기간 야구계의 매력을 전했고, 다음 세대에 야구를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추모했다.
재일 교피이자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연합뉴스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재일 교포 2세로 태어난 장훈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다섯 살 때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누나를 잃었다. 어린 시절 입은 화상으로 오른손에 장애가 남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타자로 성장했다.
오사카의 야구 명문 나니와상고를 거쳐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한 장훈은 데뷔 첫해부터 신인왕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1년 처음 타격왕에 오른 데 이어 1962년에는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이후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통산 7차례 타격왕에 올랐다. 도에이와 닛타쿠홈, 닛폰햄을 거쳐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고 말년에는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에서 뛰었다. 1980년에는 일본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1981년 은퇴할 때까지 23시즌 동안 27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319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3085안타는 은퇴 후 4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NPB 통산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500홈런과 300도루 기록 역시 그의 뛰어난 장타력과 주력을 보여준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최다 안타 기록(3085개)을 세우는 등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676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연합뉴스
은퇴 뒤에도 야구계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1990년 일본 야구전당에 헌액됐고 오랜 기간 야구 해설자와 평론가로 활동했다. 특히 TBS의 장수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 스포츠 코너에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넘게 고정 패널로 출연해 부진한 플레이에는 호통을 치는 거침없는 평론으로 일본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별세 두 달여 전까지도 야구장을 찾았다. 장훈은 지난 7월 27일 도쿄돔에서 열린 '산토리 드림 매치 2026'에 참가해 86세의 나이로 대타로 타석에 섰다. 당시 상대 투수 우에하라 고지가 장훈을 고의사구로 내보내면서 관중들의 웃음과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 야구와의 인연도 각별했다. 한국 이름 '장훈'으로 국내 팬들에게 오랫동안 친숙했던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전후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 등을 맡아 한일 야구 교류와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공로로 1980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2007년에는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이 가운데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장훈은 2024년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를 통해 수년 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23시즌 타율 0.319·504홈런
원폭·오른손 장애 딛고 정상 올라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도 힘 보태일본프로야구(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재일 교포 출신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10일 연합뉴스는 일본 TBS와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 등을 인용해 장훈이 지난 9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일본프로야구 명구회는 장훈에 대해 "압도적인 타격 성적과 야구를 대하는 엄격한 자세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며 "은퇴 후에도 야구 해설자와 평론가로 오랜 기간 야구계의 매력을 전했고, 다음 세대에 야구를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추모했다.
재일 교피이자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연합뉴스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재일 교포 2세로 태어난 장훈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다섯 살 때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누나를 잃었다. 어린 시절 입은 화상으로 오른손에 장애가 남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타자로 성장했다.
오사카의 야구 명문 나니와상고를 거쳐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한 장훈은 데뷔 첫해부터 신인왕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1년 처음 타격왕에 오른 데 이어 1962년에는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이후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통산 7차례 타격왕에 올랐다. 도에이와 닛타쿠홈, 닛폰햄을 거쳐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고 말년에는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에서 뛰었다. 1980년에는 일본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1981년 은퇴할 때까지 23시즌 동안 27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319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3085안타는 은퇴 후 4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NPB 통산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500홈런과 300도루 기록 역시 그의 뛰어난 장타력과 주력을 보여준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최다 안타 기록(3085개)을 세우는 등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676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연합뉴스은퇴 뒤에도 야구계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1990년 일본 야구전당에 헌액됐고 오랜 기간 야구 해설자와 평론가로 활동했다. 특히 TBS의 장수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 스포츠 코너에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넘게 고정 패널로 출연해 부진한 플레이에는 호통을 치는 거침없는 평론으로 일본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별세 두 달여 전까지도 야구장을 찾았다. 장훈은 지난 7월 27일 도쿄돔에서 열린 '산토리 드림 매치 2026'에 참가해 86세의 나이로 대타로 타석에 섰다. 당시 상대 투수 우에하라 고지가 장훈을 고의사구로 내보내면서 관중들의 웃음과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 야구와의 인연도 각별했다. 한국 이름 '장훈'으로 국내 팬들에게 오랫동안 친숙했던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전후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 등을 맡아 한일 야구 교류와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공로로 1980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2007년에는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이 가운데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장훈은 2024년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를 통해 수년 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