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3천 안타' 일본야구의 전설, 재일교포 장훈 별세
일본프로야구 최다 안타 기록 보유... '안타 제조기'로 이름 날려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197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장훈. 2026.9.10ⓒ 연합뉴스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이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현직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는 10일 "장훈 해설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라고 발표했다.
일본 NHK방송, 교도통신 등 현지 매체도 "일본 프로야구 최다 안타를 치며 '안타 제조기'로 불렸던 장훈 위원이 사망했다"라고 보도했다.
오른손 장애 딛고 일본 최고의 타자 되기까지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어린 시절 화상 때문에 오른손 장애를 입었고, 여섯 살 위 누나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시련을 겪으며 성장했다.
오사카 나니와상고를 거쳐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해 프로 무대에 데뷔한 장훈은 곧바로 신인왕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장훈 위원은 고교 시절 홈런 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타격 코치 마츠키 켄지로부터 "프로 무대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중장거리 타자가 더 유리하다"라는 조언을 듣고 타격의 힘보다는 정확도를 높이는 데 힘썼다.
그 결과 선수 생활을 하면서 타격왕에 7차례나 올랐고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1976년에는 일본 최고 인기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겨 대만 국적의 홈런 타자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함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3천 안타' 대기록... "위대한 야구인"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
그가 일본프로야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최다 안타 기록이다. 1980년 5월 28일 지바 롯데 선수였던 장훈 위원은 한큐 브레이브스전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그 후 85개의 안타를 더 보태고 1981년 은퇴한 장훈 위원의 3085안타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통산 안타 2위 노무라 가쓰야가 2901개, 3위 오 사다하루가 2786개다.
장훈 위원은 현역 은퇴 후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인 '야구 전당'에 헌액됐다.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선수들의 실책이나 부진을 엄하게 꾸짖는 특유의 독설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 야구와의 교류에도 힘썼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0)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아 2005년까지 꾸준히 활동했으며, 2007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장훈 위원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으면서 차별을 견디고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다만 은퇴 후 일본으로 국적을 바꿨다. 일본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다.
일본 유명 야구평론가 고지키는 <야후재팬>에 "장훈 위원은 기록에도, 기억에도 남는 위대한 야구인이었다"라며 "앞으로 새로운 스타가 나타났을 때 그의 평론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197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장훈. 2026.9.10ⓒ 연합뉴스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이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현직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는 10일 "장훈 해설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라고 발표했다.
일본 NHK방송, 교도통신 등 현지 매체도 "일본 프로야구 최다 안타를 치며 '안타 제조기'로 불렸던 장훈 위원이 사망했다"라고 보도했다.
오른손 장애 딛고 일본 최고의 타자 되기까지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어린 시절 화상 때문에 오른손 장애를 입었고, 여섯 살 위 누나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시련을 겪으며 성장했다.
오사카 나니와상고를 거쳐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해 프로 무대에 데뷔한 장훈은 곧바로 신인왕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장훈 위원은 고교 시절 홈런 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타격 코치 마츠키 켄지로부터 "프로 무대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중장거리 타자가 더 유리하다"라는 조언을 듣고 타격의 힘보다는 정확도를 높이는 데 힘썼다.
그 결과 선수 생활을 하면서 타격왕에 7차례나 올랐고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1976년에는 일본 최고 인기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겨 대만 국적의 홈런 타자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함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3천 안타' 대기록... "위대한 야구인"
▲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그가 일본프로야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최다 안타 기록이다. 1980년 5월 28일 지바 롯데 선수였던 장훈 위원은 한큐 브레이브스전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그 후 85개의 안타를 더 보태고 1981년 은퇴한 장훈 위원의 3085안타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통산 안타 2위 노무라 가쓰야가 2901개, 3위 오 사다하루가 2786개다.
장훈 위원은 현역 은퇴 후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인 '야구 전당'에 헌액됐다.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선수들의 실책이나 부진을 엄하게 꾸짖는 특유의 독설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 야구와의 교류에도 힘썼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0)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아 2005년까지 꾸준히 활동했으며, 2007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장훈 위원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으면서 차별을 견디고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다만 은퇴 후 일본으로 국적을 바꿨다. 일본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다.
일본 유명 야구평론가 고지키는 <야후재팬>에 "장훈 위원은 기록에도, 기억에도 남는 위대한 야구인이었다"라며 "앞으로 새로운 스타가 나타났을 때 그의 평론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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