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각티비

스포츠 뉴스

해외야구 화상·원자폭탄·재일교포 설움 딛고 이룬 NPB 3000안타 대기록, '전설' 장훈 선생 별세...향년 86세

관리자 각티비 2026-09-10 10:34 24 0
-日 통산 3085안타 대기록 장훈 별세
-오른손 화상·원폭 차별 딛고 3000안타
-1982년 KBO 출범 이끈 '숨은 산파'6428219_1_81076ffe.webp장훈과 이승엽(사진=삼성)

[더게이트]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첫 3000안타 대기록의 주인공, 재일동포 야구 원로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영원한 잠에 들었다. 향년 86세.

일본 TBS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장훈은 9일 오후 5시쯤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히로시마 출신인 그는 도에이 플라이어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롯데 오리온스 등에서 뛰며 타격왕을 일곱 차례 차지했고,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개인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은 레전드 중의 레전드다.

장훈은 신체적 장애와 사회적 차별 속에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다. 1940년 6월 히로시마에서 경남 창녕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난 고인은 네 살 때 집 근처 강둑에서 후진하던 트럭을 피하려다 오른손을 모닥불에 크게 데는 사고를 당했다. 이 화상으로 엄지와 검지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살점이 눌어붙었다.

이듬해에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장훈 가족은 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1km 안쪽에 머물고 있었다. 이 참사로 큰누나를 잃었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장훈은 일본 정부가 발급하는 피폭자 건강수첩에 최고 등급인 A등급으로 기록됐다.

더 힘겨웠던 건 그 이후였다. 장훈은 생전 "진짜 무서운 건 원폭 이후의 사회였다"며 "피폭자는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사회에서 차별받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손가락 장애와 원폭 피해자라는 낙인, 여기에 재일교포라는 주홍글씨까지 세 개의 모래주머니를 찬 채로 야구 인생을 시작한 장훈이다.

광각타법으로 완성한 3000안타6428219_2_37ba3fd9.webp생전의 장훈 선생(사진=삼성)

오른손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장훈이 고안한 건 공을 끝까지 지켜보다 밀어치는 광각타법이었다. 몸쪽 공이든 바깥쪽 공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쳤고, 그라운드 전역에 부채꼴로 타구를 보내는 스프레이 히터였다. 1959년 도에이 입단 이후 이 특유의 타법을 앞세워 타격왕만 일곱 차례 거머쥐었다.

1980년 5월 28일엔 NPB 최초의 개인 통산 3000안타 대기록을 홈런으로 완성했다. 커리어 통산 기록은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319도루다. 특히 3000안타 기록은 2009년 스즈키 이치로가 미·일 통산 기록으로 달성하기 전까지 30년 가까이 그 누구도 범점하지 못했다.

은퇴 후 장훈은 해설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유의 독설을 앞세운 화법으로 TBS '선데이 모닝' 등에 고정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19년에는 특급 유망주 사사키 로키의 고교야구 결승전 결장 문제를 두고 "부상이 두려우면 야구를 그만두라"고 일갈해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와 공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탄생에도 힘을 보탰다. 장훈은 1982년 KBO리그 출범 이전부터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 고 이호헌 전 KBO 사무차장과 함께 구단 수와 운영 체계를 조율하며 리그의 뼈대를 짰다. 일본 프로야구 현역 심판들을 데려와 한국 심판을 교육시켰고, 초대 총재 후보 인선에도 관여했다.

도에이 시절 한솥밥을 먹던 백인천을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에게 추천해 일본 프로야구에 입단시킨 것도 그였다. 지난달 백인천이 별세했을 때 장훈은 일본 매체 스포니치를 통해 "나보다 세 살 어린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고 그를 추모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의 뒤를 따르게 됐다.

평생 여러 차례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한국 국적을 지켜온 장훈은 지난 2024년 12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몇 년 전 국적을 바꿨다. 지금은 일본 국적"이라고 밝혀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이어 "20년 넘게 KBO 총재 특별보좌역을 하면서 프로리그를 만들었는데 한국시리즈, 올스타전 같은 행사에 한 번도 초청된 적이 없다"며 "은혜도 의리도 잊어버린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올해 들어 한국 야구계는 유독 큰 별을 자주 떠나보냈다. 지난달 15일에는 KBO리그 원년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향년 83세로, 19일에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끈 어우홍 전 대표팀 감독이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KBO는 두 사람의 장례를 모두 KBO장으로 치렀다. 장훈의 공로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면, KBO는 장훈에게도 적절한 예우를 표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