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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야구 소속도 취재비도 없었다…‘72년만의 美여자프로야구’ 자비로 날아간 기자

관리자 각티비 2026-09-10 09:48 25 0
“내가 안 가면 이 기록은 남지 않는다”…기자 황혜정의 미국 여자프로야구(WPBL) 취재기6426986_1_e871b7b5.webp미국 WPBL 현지에서 한국선수들을 인터뷰하는 모습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소속 매체도 없었다. 항공료와 체류비를 지원해줄 회사도 없었다. 그래도 미국행 비행기 표를 샀다.

72년 만에 다시 시작된 미국 여자프로야구의 첫 시즌. 그 역사적인 그라운드에 선 한국 선수들의 장면을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훗날 충분한 기록이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23년 한국야구기자회 ‘올해의 야구기자상’을 받은 전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 황혜정(30)의 이야기다.

황 기자는 지난 8월 미국 일리노이주로 향했다.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는 8월 1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로빈 로버츠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의 막을 올렸다. 뉴욕 하이츠와 보스턴 헌터스, LA 퀸즈,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등 4개 팀이 참가했다.

6426986_2_a202cdd6.webp그라운드를 응시하는 황혜정 기자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3명도 이 역사적인 첫 시즌에 뛰어들었다.

투수 김라경은 뉴욕 하이츠, 김현아는 보스턴 헌터스, 내야수 박주아는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유니폼을 입었다. 세 선수 모두 정규시즌을 마친 뒤, 현재 WPBL 첫 포스트시즌 무대까지 밟고 있다.

황 기자가 미국행을 결심했을 당시에는 소속 매체가 없었다. 항공료와 숙박비 등 현지 취재 비용도 모두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그래도 가기로 했다.

WPBL 첫 시즌에 참가한 한국 선수 3명의 활약과 목소리를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훗날 이 시간을 되짚을 자료가 충분히 남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출국을 앞두고 황 기자는 여성신문에 현지 취재기 기고를 제안했다. 여성신문도 취지에 공감했다. 그동안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데 뜻이 맞았다.

황 기자는 객원기자 자격으로 미국 현장을 취재했고, 현지에서 보낸 기사는 여성신문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하지만 역사적인 첫 시즌을 글만으로 남기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리 촘촘하게 기사를 써도 경기장의 표정과 선수들의 목소리, 스포츠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감정까지 글에 모두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6426986_3_81ea8602.webp미국 WPBL 현지에서 한국선수들을 인터뷰하는 모습
여성신문의 제안으로 황 기자의 짐에는 작은 캠코더 하나가 더해졌다. 그리고 그 카메라 앞에 김라경과 김현아, 박주아가 차례로 앉았다.

인터뷰는 딱딱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냈다. 준비된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황 기자와 선수들이 농담을 주고받고, 지난 시간을 되짚는 장면까지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4년 동안 쌓아온 시간 덕분이다.

황 기자는 스포츠서울에 입사한 2022년부터 여자야구 현장을 꾸준히 찾았다. 선수들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경기장을 다니며 이름과 기록을 기사에 남겼다. 2022년 9월부터 ‘여자야구 현주소’라는 이름으로 27건의 시리즈 기사와 별도 칼럼도 작성했다.

한국야구기자회는 이 취재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야구기자회는 이를 평가해 황 기자를 ‘2023년 올해의 야구기자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심사위원회가 밝힌 선정 이유도 특별했다.

“조회수와 별도로 사각지대를 다룬 황 기자의 기사에 큰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시선은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한국 선수들뿐 아니라 일본 여자야구의 ‘레전드’로 불리는 투수 사토 아야미(LA 퀸즈)도 황 기자의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사람의 인연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게 아니다.

지난해 김라경의 소개로 한국을 찾은 사토와 따로 만나 식사를 함께할 만큼 관계를 이어왔다. 덕분에 미국에서도 자연스럽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6426986_4_5970c63c.webp최초로 WPBL에 도전한 한국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황 기자가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은 이후 29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완성됐다.

여성신문 손상민 사진기자와 장혜진 영상기자가 기획과 제작, 편집을 맡아 현장에서 담아온 영상에 호흡을 불어넣었다.

기사 속 문장으로 남았던 여자야구 선수들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얼굴과 표정, 목소리를 가진 영상 기록으로도 남은 것. 다큐멘터리는 여성신문 유튜브 채널 ‘호호탕탕’을 통해 공개됐다.

황 기자의 시선은 이제 또다른 곳을 확장하고 있다. 기자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로 돌아갔다. 학부에서 전공했던 교육공학을 다시 공부하며 임규연 교수의 지도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라운드의 사각지대를 오래 바라봤던 시선이 이제 교육 현장의 사각지대로 이동한 셈이다.

취재 현장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선수와 이야기를 발견해 기록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학습과 교육 과정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경험과 변화를 연구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 기자는 말한다.

“이번 미국행의 취지에 공감해 기사와 영상, 지면으로 기록이 남을 수 있도록 큰 힘을 실어준 여성신문에게 감사하다. 제가 어디에 있든 그곳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잘 보이지 않는 사람과 현상을 발견해 기록하고 세상에 보이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72년 만에 다시 열린 미국 여자프로야구의 첫 시즌은 이미 역사다. 김라경과 김현아, 박주아는 그 역사 안에 당당하게 이름을 남겼다.

소속도, 취재비 지원도 없이 자신의 돈으로 태평양을 넘어간 단 한명의 저널리스트는 그들의 출발을 글과 영상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남들이 많이 보는 곳이 아니라,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지 모르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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