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20959번의 토스... 리빙 레전드 한선수 "나이 핑계 대기 싫다"
한선수가 일본 전지훈련 연습경기에 출전하고 있다./대한항공[마이데일리 = 심혜진 기자] 2만959개.
2007-2008시즌 프로 데뷔한 세터 한선수(41·대한항공)가 쌓아 올린 통산 세트 기록이다. 한선수를 제외하면 한국 남자 배구 역사에서 그 누구도 닿지 못한 고지다.
최근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에서 만난 한선수는 “하나 추가할 때마다 신기록이라 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은퇴할 때 몇 개까지 쌓여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때 ‘미소년’이었던 그가 어느덧 ‘꽃중년’이 됐지만 외모도, 기량도 여전하다. 외모를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즐겁게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면서 "이제 나도 피부 관리를 좀 해야 한다. 아내가 뭐라도 바르라고 챙겨주는데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맨날 깜빡한다"며 웃었다.
‘리빙 레전드’란 수식어가 한선수보다 더 어울리는 선수는 찾기 쉽지 않다. 20년째 대한항공에서만 뛰고 있는 ‘원 클럽맨’ 한선수는 대한항공이 2017-2018시즌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을 때부터 여섯 차례 정상에 올랐다. 2022-2023시즌에는 남자부 세터 최초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고, 지난 시즌에 두 번째 정규리그 MVP를 거머쥐었다.
그런 한선수도 불혹을 넘긴 터라 익숙했던 하루하루가 이전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한선수는 "매 경기 매 훈련이 특별하다"며 "여전히 배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자연스럽게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7-2008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 지명을 받은 한선수는 엄청난 유망주는 아니었다. 한선수는 스스로를 천재보다는 ‘노력파’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는 "나는 타고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재능을 가진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스무살 가까이 차이 나는 어린 후배들과 똑같은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는 그의 ‘노력’은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한선수는 "당연히 힘들다. 어쨌든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선택한 직업이다. 나이를 핑계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30년 가까이 코트에서 세터를 맡아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생각하는 ‘좋은 세터’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한선수는 "공격수가 때리기 좋게 공을 올려주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팀까지 잘 이끌어갈 수 있어야 좋은 세터"라고 말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한선수는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6-2017시즌부터 2025-2026시즌까지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1명인 공격수에게 공을 띄우는 ‘러닝 세트’를 8466번 시도해 5308번(1위) 성공시켰다. 시도와 성공 모두 남자부에서 가장 많다. 공격수에게 유리한 득점 기회를 누구보다 많이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는 팀에서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다. 한선수는 "이제는 젊은 선수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잘 따라가면서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들블로커 조재영(35)에게 10년 넘게 뛰면서 팀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묻자 망설임 없이 "세터 한선수"라고 답했다. 한선수 역시 “계속 코트를 지키는 이유도 결국 팀 때문"이라며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은퇴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 시즌은 구단과 맺은 계약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한선수는 "마흔두 살 정도까지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그 나이가 됐다"며 "일단 시즌을 치러봐야 앞으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미뤄뒀던 공부를 해볼 계획이다. 한선수는 "가족들과 함께 외국에서 지내면서 영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한선수가 코트를 떠나는 날, 20년 가까이 달아온 등번호 ‘2번’도 한선수와 함께 은퇴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선수는 "처음에는 당시 남아 있던 번호라서 2번을 달았는데 굳이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영구결번 욕심은 없느냐고 묻자 "정말 그렇게 된다면 영광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은퇴 이후보다 눈앞의 2026-2027시즌이 먼저다. 지난 4일 일본 SV리그 사카이 블레이저스와 연습 경기를 치른 한선수는 "일본 선수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반면 우리는 아직 모든 면에서 더 안정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연습도 많이 하고 선수들끼리 대화도 많이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일본 전지훈련을 마친 대한항공은 7일 귀국해 19일부터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KOVO컵 준비를 시작한다. 목표는 남자부 최초의 2년 연속 ‘트레블’(3관왕·챔피언결정전 우승, 정규리그 1위, 컵대회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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