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벤치·부상 견디고 태극마크 달기까지… 임재영의 배구 인생엔 ‘기다림’이 있다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의 아웃사이드 히터 임재영. 대한항공 제공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의 아웃사이드 히터 임재영의 배구 인생은 ‘기다림’이란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코트보다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 때도 있었고,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부상으로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임재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 데뷔 7년째인 올해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 무대까지 밟았다.2026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소속팀에 복귀한 임재영은 5일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강팀들을 상대하면서 ‘정말 한 끗 차이구나. 우리도 많이 올라왔구나’라는 걸 느꼈다”며 “개인적으로도 리시브에서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고 했다.
올해는 임재영에게 특별한 해였다. 2020~2021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뒤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5월 대표팀에 합류한 뒤 아시아배구연맹(AVC)컵과 동아시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을 거쳐 아시안게임까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대표팀 발탁 소식을 들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임재영은 “무릎 수술을 받은 지 불과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는 건 내 마지막 꿈이기도 했다”며 “기회를 주신 것 자체가 감사했고,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입단 초기에는 정지석과 곽승석 등 쟁쟁한 선배들이 버티고 있어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상무 입대를 앞둔 2022~2023시즌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는 15명 출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임재영은 “‘나는 엔트리에도 못 드는 선수구나’라는 생각에 좌절도 많이 했고 스스로에게 실망도 컸다”며 “‘아무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군대에 가면 그저 그런 선수로 은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군 복무를 마치고 소속팀으로 돌아온 후에는 ‘잠은 죽어서 잔다’는 좌우명을 품고 누구보다 독하게 새 시즌을 준비했다. 임재영은 “지난 시즌은 살아오면서 가장 열심히 했던 시즌이었다. 감독님이 처음 오신 뒤 어떻게든 (실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100%를 쏟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정지석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마침내 임재영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임재영은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정지석의 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판을 다친 임재영은 한창 좋은 흐름을 이어가던 중 다시 코트를 떠나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기회를 또다시 놓치게 되자 마음도 무너졌다. 임재영은 “‘나는 안 되나 보다. 이제 끝인가 보다’라는 생각까지 했다”라고 돌아봤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임재영은 “아내가 없었다면 그대로 무너졌을 것 같다. 이제 아이도 있으니 ‘다시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장 정지석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며 후배를 다독였다.
임재영은 결국 70여일 만에 부상을 딛고 일어나 대한항공의 정상 탈환을 함께 했고,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아빠가 된 뒤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된 만큼 감회도 남달랐다. 그는 “저와 아내는 국가대표가 된 걸 정말 기뻐했는데, 집에 많이 들어가지 못하니 세 살 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크면 아빠가 그래도 나라를 대표해서 뛰었던 선수였다는 걸 알아주지 않을까”라고 했다.
오랜 기다림은 임재영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선발보다는 교체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임재영은 “항상 기다리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 실력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하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기다림을 견디는 법도 안다. 임재영은 “밑바닥까지 경험해 봤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멘털이 잘 흔들리지 않는다”며 “많은 선수가 비슷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힘으로 한계를 깨뜨리면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는 온다”고 했다.새 시즌에는 마냥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을 생각이다. 무엇보다 바라는 건 ‘건강한 완주’다. 임재영은 “다치지만 않아도 시즌을 돌아봤을 때 ‘괜찮은 시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2년 연속 ‘트레블’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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