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김종석의 그라운드] "32년 전 엄마·아빠가 금메달…이젠 우리 아들이" 유기상 가족의 금빛 인연
- 1994 히로시마서 정구 금메달 유영동·박영아…2026 나고야에선 아들이 농구 정상
- 준결승 발목 부상에도 "조금이라도 뛸 수 있으면 뛰어서 팀에 보탬 되고 싶다"
- 정구 남녀 단체전 탈락 지켜본 유영동 감독, 아쉬움 뒤로하고 전철 타고 아들 결승 응원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한국의 우승이 확정된 뒤 유기상(7번)이 환호하고 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정구 금메달을 따낸 유영동과 박영아. 같은 대회에서 각각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훗날 부부가 됐다.
"32년 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엄마, 아빠가 금메달을 땄는데, 어느덧 우리 아들이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감격스럽고 의미가 있는 것 같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아들을 격려하려고 어머니 박영아 씨가 며칠 전 가족 단체대화방에 남긴 글입니다.
32년 전 자신과 남편이 나란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일본에서 이번에는 아들이 아시아 정상에 섰습니다. 부모는 정구 라켓을 들었고 아들은 농구공을 잡았습니다. 종목과 세대는 달랐지만 가족의 특별한 금빛 인연은 다시 일본에서 이어졌습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에서 금메달을 딴 유기상(25·창원 LG)과 아버지 유영동 NH농협은행 정구팀 감독, 어머니 박영아 씨 가족이 그 주인공입니다.
유기상은 한국이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꺾으면서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 남자농구는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다섯 번째 정상에 올랐습니다. 2002년 부산과 2014년 인천 등 안방 우승을 제외하면 1982년 뉴델리 이후 44년 만에 해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남자농구 금메달입니다.
유기상은 프로농구 LG를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뒤 아버지 유영동 감독, 어머니 박영아 씨, 형 유진상 씨와 기쁨을 나눴다.
같은 히로시마에서 금메달 딴 엄마와 아빠
유영동 감독은 한국 정구를 대표했던 스타입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남자복식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를 따냈습니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3관왕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NH농협은행 정구팀 감독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박영아 씨도 국가대표 정구선수 출신입니다. 당시 농협 여자 정구팀 소속으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훗날 부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2년 뒤 아들이 다른 종목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일본에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유기상이 부모의 종목을 그대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정구 대신 농구공을 잡았습니다. 학생 선수로 성장해 연세대를 거쳐 프로농구 LG에 진출했고 이제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게임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다만 운동선수로서 승부를 대하는 마음가짐만큼은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듯합니다.
그 모습은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유영동 유기상 부자.
"아픈데 뛰겠다는 욕심만으로 팀에 피해 주면 안 되니까"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유기상은 3점슛을 던진 뒤 착지 과정에서 발목을 다쳤습니다. 한국은 77-51로 이겨 결승 진출을 확정했지만 유기상의 결승 출전 여부는 불투명해졌습니다.
그 장면을 아버지 유 감독이 경기장에서 직접 지켜봤습니다.
결승을 앞두고 유기상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몸 상태와 생각을 전했습니다.
"오늘 병원 가서 진단받아봐야 알겠지만 뛸 수 있는 정도라면 아파도 뛰겠다는 생각이고…. 또 아픈데 뛰고 싶은 생각만 가지고 들어가서 팀에 피해 주면 안 되니까 몸 상태 보고 결정하겠다고."
이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어차피 오래 뛰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뛸 수 있는 몸이면 뛰어서 보탬이 되고 싶다고."
뛰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 때문에 팀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유 감독의 답도 선수와 지도자로 수십 년을 살아온 아버지다웠습니다.
"너무 힘든 시간 잘 견뎌왔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줬으면 합니다. 한 팀의 팀원으로서 우승에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에게 무조건 뛰라고 하지도 않았고 부상 때문에 쉬라고만 하지도 않았습니다. 몸 상태를 냉정하게 판단하되 팀의 한 구성원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였습니다.
유기상에게도 '나의 결승'보다 '팀의 결승'이 먼저였습니다.
정구의 아쉬움 안고 전철 타고 농구장으로
유 감독에게 20일은 감정의 진폭이 유난히 컸던 하루였습니다.
그는 아들의 농구 결승에 앞서 정구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한국 정구 대표팀이 남녀 단체전에서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현장을 직접 지켜봤습니다.
선수 시절 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를 따냈고 지금도 정구 지도자로 살아가는 유 감독에게 후배들의 탈락은 누구보다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구 대표팀의 성적을 먼저 걱정한 그는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슬며시 아들 응원에 나섰습니다. 농구장이 있는 나고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낮에는 평생을 함께한 정구의 아쉬운 결과를 지켜봤고, 저녁에는 아들이 뛰는 농구 결승을 관중석에서 바라봤습니다.
아들 유기상이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한국과 일본의 남자농구 결승을 현장에서 지켜본 유영동 감독. 유 감독은 이날 먼저 한국 정구 남녀 단체전의 결승 진출 실패를 지켜본 뒤 전철을 타고 농구장으로 향했다.
아시안게임에서 숱한 승부를 직접 치러본 유 감독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선수가 아니라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유 감독에게는 정구 대표팀의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의 금메달을 바라봐야 했던 묘한 하루였습니다. 32년 전 자신이 일본에서 금메달을 따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자리에서 또 하나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지켜봤습니다.
평소 좋은 것이 생기면 가족부터 생각한다는 유기상은 당초 지난해 입대를 계획했지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군 복무 시기를 미뤘습니다. 이번 금메달로 예술·체육요원 편입 요건도 갖추게 됐습니다. 아버지 유 감독 역시 1994년 히로시마 금메달로 선수 생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라켓을 잡은 부모와 농구공을 잡은 아들. 종목은 달랐지만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같았습니다. 아시안게임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였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에서는 아버지 유영동과 어머니 박영아가 함께 금메달을 땄습니다. 유 감독은 이후에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추가하며 한국 정구의 간판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함께 정상에 섰던 히로시마 대회로부터 32년이 흐른 2026년 나고야에서는 아들 유기상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정구 라켓에서 농구공으로, 엄마·아빠에서 아들로. 1994년 히로시마에서 시작된 가족의 특별한 금빛 인연이 32년 뒤 다시 일본에서 이어졌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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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결승 발목 부상에도 "조금이라도 뛸 수 있으면 뛰어서 팀에 보탬 되고 싶다"
- 정구 남녀 단체전 탈락 지켜본 유영동 감독, 아쉬움 뒤로하고 전철 타고 아들 결승 응원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한국의 우승이 확정된 뒤 유기상(7번)이 환호하고 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정구 금메달을 따낸 유영동과 박영아. 같은 대회에서 각각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훗날 부부가 됐다."32년 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엄마, 아빠가 금메달을 땄는데, 어느덧 우리 아들이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감격스럽고 의미가 있는 것 같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아들을 격려하려고 어머니 박영아 씨가 며칠 전 가족 단체대화방에 남긴 글입니다.
32년 전 자신과 남편이 나란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일본에서 이번에는 아들이 아시아 정상에 섰습니다. 부모는 정구 라켓을 들었고 아들은 농구공을 잡았습니다. 종목과 세대는 달랐지만 가족의 특별한 금빛 인연은 다시 일본에서 이어졌습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에서 금메달을 딴 유기상(25·창원 LG)과 아버지 유영동 NH농협은행 정구팀 감독, 어머니 박영아 씨 가족이 그 주인공입니다.
유기상은 한국이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꺾으면서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 남자농구는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다섯 번째 정상에 올랐습니다. 2002년 부산과 2014년 인천 등 안방 우승을 제외하면 1982년 뉴델리 이후 44년 만에 해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남자농구 금메달입니다.
유기상은 프로농구 LG를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뒤 아버지 유영동 감독, 어머니 박영아 씨, 형 유진상 씨와 기쁨을 나눴다.같은 히로시마에서 금메달 딴 엄마와 아빠
유영동 감독은 한국 정구를 대표했던 스타입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남자복식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를 따냈습니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3관왕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NH농협은행 정구팀 감독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박영아 씨도 국가대표 정구선수 출신입니다. 당시 농협 여자 정구팀 소속으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훗날 부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2년 뒤 아들이 다른 종목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일본에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유기상이 부모의 종목을 그대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정구 대신 농구공을 잡았습니다. 학생 선수로 성장해 연세대를 거쳐 프로농구 LG에 진출했고 이제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게임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다만 운동선수로서 승부를 대하는 마음가짐만큼은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듯합니다.
그 모습은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유영동 유기상 부자."아픈데 뛰겠다는 욕심만으로 팀에 피해 주면 안 되니까"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유기상은 3점슛을 던진 뒤 착지 과정에서 발목을 다쳤습니다. 한국은 77-51로 이겨 결승 진출을 확정했지만 유기상의 결승 출전 여부는 불투명해졌습니다.
그 장면을 아버지 유 감독이 경기장에서 직접 지켜봤습니다.
결승을 앞두고 유기상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몸 상태와 생각을 전했습니다.
"오늘 병원 가서 진단받아봐야 알겠지만 뛸 수 있는 정도라면 아파도 뛰겠다는 생각이고…. 또 아픈데 뛰고 싶은 생각만 가지고 들어가서 팀에 피해 주면 안 되니까 몸 상태 보고 결정하겠다고."
이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어차피 오래 뛰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뛸 수 있는 몸이면 뛰어서 보탬이 되고 싶다고."
뛰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 때문에 팀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유 감독의 답도 선수와 지도자로 수십 년을 살아온 아버지다웠습니다.
"너무 힘든 시간 잘 견뎌왔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줬으면 합니다. 한 팀의 팀원으로서 우승에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에게 무조건 뛰라고 하지도 않았고 부상 때문에 쉬라고만 하지도 않았습니다. 몸 상태를 냉정하게 판단하되 팀의 한 구성원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였습니다.
유기상에게도 '나의 결승'보다 '팀의 결승'이 먼저였습니다.
정구의 아쉬움 안고 전철 타고 농구장으로
유 감독에게 20일은 감정의 진폭이 유난히 컸던 하루였습니다.
그는 아들의 농구 결승에 앞서 정구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한국 정구 대표팀이 남녀 단체전에서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현장을 직접 지켜봤습니다.
선수 시절 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를 따냈고 지금도 정구 지도자로 살아가는 유 감독에게 후배들의 탈락은 누구보다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구 대표팀의 성적을 먼저 걱정한 그는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슬며시 아들 응원에 나섰습니다. 농구장이 있는 나고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낮에는 평생을 함께한 정구의 아쉬운 결과를 지켜봤고, 저녁에는 아들이 뛰는 농구 결승을 관중석에서 바라봤습니다.
아들 유기상이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한국과 일본의 남자농구 결승을 현장에서 지켜본 유영동 감독. 유 감독은 이날 먼저 한국 정구 남녀 단체전의 결승 진출 실패를 지켜본 뒤 전철을 타고 농구장으로 향했다.아시안게임에서 숱한 승부를 직접 치러본 유 감독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선수가 아니라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유 감독에게는 정구 대표팀의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의 금메달을 바라봐야 했던 묘한 하루였습니다. 32년 전 자신이 일본에서 금메달을 따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자리에서 또 하나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지켜봤습니다.
평소 좋은 것이 생기면 가족부터 생각한다는 유기상은 당초 지난해 입대를 계획했지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군 복무 시기를 미뤘습니다. 이번 금메달로 예술·체육요원 편입 요건도 갖추게 됐습니다. 아버지 유 감독 역시 1994년 히로시마 금메달로 선수 생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라켓을 잡은 부모와 농구공을 잡은 아들. 종목은 달랐지만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같았습니다. 아시안게임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였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에서는 아버지 유영동과 어머니 박영아가 함께 금메달을 땄습니다. 유 감독은 이후에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추가하며 한국 정구의 간판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함께 정상에 섰던 히로시마 대회로부터 32년이 흐른 2026년 나고야에서는 아들 유기상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정구 라켓에서 농구공으로, 엄마·아빠에서 아들로. 1994년 히로시마에서 시작된 가족의 특별한 금빛 인연이 32년 뒤 다시 일본에서 이어졌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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