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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지도자 컴백한 4할 타자 “야구를 했으면 역사를 써라”

관리자 각티비 2026-09-19 00:02 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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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고(故) 백인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6968094_1_cf8d4cd3.webp한국 프로야구 45년 역사상 '유일무이한 4할 타자'인 백인천 선생이 지난달 타계했다. 사진은 1960년대 중반 도에이 플라이어즈(현 니혼햄 파이터스) 훈련장에서 백인천과 장훈이 함께 찍힌 모습. 백 선생은 배트를 거꾸로 들고 총을 쏘는 익살스런 포즈를 취했다. [사진 장규홍] 한국 프로야구(KBO리그) 45년 역사상 ‘유일무이한 4할 타자’인 백인천 선생이 지난달 15일 광복절에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백인천을 일본 야구로 이끌고 13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장훈 선생도 9월 9일 ‘기 세고 지지 않으려 했던 후배’를 따라 떠났다.

1963년부터 81년까지 19년간 일본에서 활약한 백인천 선생은 1975년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에 올랐고, 장훈 선생은 7차례 수위타자를 차지하며 통산 3085개 안타를 날려 일본 프로야구 역대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백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아차’ 싶었다. 수년 전부터 인터뷰를 추진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던 199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네 번이나 뇌출혈을 맞았다. 말년에는 가족과 떨어져 충남 천안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지내왔다.

백 선생과 마지막까지 연락하며 지냈던 장규홍 채널인 대표를 이달 9일 만났다. 장훈 선생이 돌아가신 날이다. 방송기자 출신인 장 대표는 10여 년 동안 한국야구 레전드 50여 명을 만나 그들과 한 인터뷰를 영상에 담아 왔다.

2017년 찍은 백 선생 인터뷰 영상을 함께 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가 비교적 또렷한 의식으로 했던 사실상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많았다. 장 대표는 60년대 중반 도에이 플라이어즈(현 니혼햄 파이터스) 훈련장에서 장훈과 백인천이 함께 찍힌 사진도 보여줬다. 사진 속에서 백인천은 배트를 거꾸로 들고 총을 쏘는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했고, 장훈은 뒤에서 무심한 듯 먼 곳을 쳐다보고 있다.

지난달 백인천 이어 이달 장훈 선생도 타계
6968094_2_d25a0ebc.webp2019년 11월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과 호주의 프리미어12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선 백인천 선생. [연합뉴스] 백인천은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태어나 광복 즈음 가족이 함께 북한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동네 형이 갖고 있던 글러브를 보며 야구를 알게 된 백인천은 힘이 좋고 발도 빨라 육상과 빙상도 잘했다. 겨울에는 강원도 철원의 저수지에서 하루 3만~4만m씩 스케이트를 탔다. 하체와 발목이 강해졌고, 팔을 계속 흔들어야 하니까 팔힘도 생겼다고 그는 회고했다.

백인천의 일본 진출은 경동고 3학년이던 1960년 도쿄 진구구장에서 시작됐다. 그는 일본 원정 경기에서 3점 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를 터뜨려 현지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먼저 도에이에 자리 잡고 있던 장훈이 감독에게 백인천을 추천하면서 테스트를 거쳐 62년 입단이 성사됐다.

백 선생은 장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진구구장에서 홈런을 친 고교생이 두 명뿐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경기에서 2루타와 3루타도 때려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프로 입단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던 날의 기억도 또렷하게 전했다. “프로펠러 4개 달린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걸렸지요. 아버님이 비행장에서 편지를 주시면서 현해탄을 건널 때 읽어보라고 하셨어요. ‘일본 프로야구라는 곳은 아무나 갈 수 없는데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받은 것은 너한테 라키(행운)다. 상당한 모험이고 힘들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식으로 쭉 열심히 노력하면 아버지는 된다고 본다’는 내용이었어요.” 일본의 야구 환경은 맨땅에서 뒹굴던 한국과는 천지 차이였다. “운동장에 하얀 공이 쫙 깔려 있는 거야. 한국에서는 하루에 공 하나, 그것도 다 낡은 걸 쓰는데. 너무 신기해서 공을 주워서 바구니에 막 넣었어요. 근데 감독·코치님이 ‘저놈은 야구에 대한 자세가 훌륭하다’고 좋게 봤어요. 공이 흩어져 있으면 선수들이 밟아서 다칠 수도 있거든. 일본어를 빨리 익히기 위해 구단에 온 전화 응대도 도맡았어요. 일본어가 빨리 느니까 선배들이 저를 참 영리하다고 예뻐했죠.”

그는 포지션도 포수에서 외야수로 바꿔 타격에 승부를 걸었다. 1975년엔 퍼시픽리그 수위 타자(타율 0.319)에 올랐다. 1979년 롯데 오리온즈 시절엔 타율 3할4푼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었다. “제가 좀 늦게 꽃이 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래 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아들·손자까지 4대가 기억하는 선수가 된 거죠.”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그를 찾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그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서울을 연고지로 한 MBC 청룡의 감독으로 낙점됐다. “처음엔 감독만 할 생각이었는데 들어와 보니까 선수도 가능하겠더라고요. 술·담배 안 하고 체력 관리를 철저히 했거든요. 젊은 선수들하고 같이 뛰면 저 못 따라왔어요. 일본 생활 정리하는 동안 창단 선수 구성을 단장하고 코치진에게 맡겼는데 자기들 좋아하는 선수들 뽑고 싫어하는 선수는 안 뽑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선수도 하게 됐지요.”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MBC 청룡은 연장 10회 말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11-7로 꺾었다. 감독 겸 5번 타자로 나서 승리를 이끈 백인천은 인터뷰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한국에도 빨리 프로야구가 생겼으면 했는데 이렇게 되니 원한이 없어요.(원이 없다는 뜻)”

백인천은 원년 시즌 타율 1위(0.412), 홈런 2위(19개), 타점 2위(64개)에 도루도 11개를 성공했다. 요즘 타자 성적의 기준이 된 OPS(출루율+장타율)는 1.237를 찍었다. 백인천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4할 타자’가 됐지만 팀은 6개 구단 중 3위에 그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1년 만에 팀을 떠나야 했다.

당시 주장이었던 이종도의 회고다. “감독님을 만난 건 우리 창단 멤버들한테 굉장한 행운이었어요. 야구 하는 방식과 열정, 긴 리그 일정 동안 컨디션 조절하는 법 등을 배웠죠. 다만 그분은 일본 프로에서 20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 있었고, 그게 우리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의 창단 감독을 맡으면서 백인천은 지도자로서 새 전기를 맞는다. “구본무 회장한테 인사를 하러 갔는데 첫 마디가 ‘감독님, 저는 야구는 전혀 모릅니다. 감독님께 다 맡길 거니까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시고 어려움 있으면 저한테 얘기하세요’였어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백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가 팀 떠난 뒤에 들어보니까 베테랑들이 매일 술이나 먹고 놀고 그런다던데, 야구를 했으면 너희 역사와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나. 나는 일본에서 수위타자도 하고 그랬잖아. 1년 만이라도 100% 야구만 해서 너희 역사와 기록을 남겨라. 그렇게 해도 안 되면 내가 감독도 시켜주고 코치도 시켜줄게.”

장규홍 채널인 대표, 야구 원로 인터뷰해와
6968094_3_bc22f7d0.webp2022년 인터뷰 당시 김성근 감독(왼쪽)과 장규홍 대표가 옛날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장규홍] 삼성과 해태 등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LG 트윈스는 창단 첫해인 1990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백 감독은 이후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를 지휘했으나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뭐든지 중독이 될 정도로 열심히 하면 못 이룰 게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천하의 백인천도 심신을 파고든 병마는 끝내 이기지 못했다.

6968094_4_a83add29.webp1962년 대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주요 멤버. 왼쪽부터 김성근·백인천·김양중·박현식. [사진 장규홍] ‘스포츠계 만물박사’로 알려진 장규홍 대표가 만난 레전드 50여 명엔 어우홍·배성서·이광환·김성근 등이 있다. 장 대표는 “대부분 원로들이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데 자신의 얘기를 듣기 위해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워낙 디테일한 내용을 물어보니까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아느냐’ 신기해하며 신이 나서 대답을 해 주시던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김우열·박노준·김건우·이병훈·송구홍 등이 나오는 선린상고 편도 만들었다. 그가 갖고 있는 인터뷰 영상들은 약간의 편집만 거치면 언제든 방송이 가능한 상태다. 몇 군데 미디어와 콘텐트 공유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장 대표는 “우리나라는 분야별로 기록과 역사를 집대성해 후대에 남기는 일에 소홀했던 것 같다”며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부터 대중문화까지, 잊혀져 가는 기록들을 남기고 그것을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전했다.

6968094_5_dc3c0bf2.webp 정영재 칼럼니스트. 중앙일보·중앙SUNDAY 스포츠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 2013년 스포츠 기자의 최고 영예인 ‘이길용체육기자상’을 받았다. 현재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 다큐: 죽은 철인의 사회』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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