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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26슬램게임] "코트 위에서 적극성은 누구한테도 안 밀립니다" 팀을 살려줄 수 있는 장신 포워드, 중앙대 …

관리자 각티비 2026-09-17 12:2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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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윤소현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세 번째 주인공은 중앙대 김두진(197cm, F)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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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Scan: 중앙대 김두진

농구부가 없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김두진은 우연치 않게 농구를 접하게 됐다. 학교에서 키가 큰 학생들을 대상으로 농구 교실 안내문을 나눠준 것이다.

“각 반에 키 큰 사람 2명씩 강당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농구 교실 안내문을 나눠 주시면서 오라고 하셨어요. 가서 배우다 보니까 정말 재밌었어요. 그렇게 선수를 시작하게 됐죠.”

비단 농구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 정식으로 도전하는 건 어려움이 따른다. 어린 김두진도 그 벽에 막혀 힘들어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는 적응을 잘 못했던 것 같다며 돌아봤다. 이후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고, 초등학교 때 같이 농구를 했던 친구들이 모두 명지중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연가초에 있던 친구들이 다 명지중에 있다고 해서, ‘그때 애들이랑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2학년 때 전학 갔어요. 사이 안 좋았던 사람 하나 없이 너무 재미있게 잘 지냈어서 좋았던 기억이 많아요.”

좋은 팀 분위기는 경기력에서 드러났다. 2019년, 명지중은 제48회 소년체전 금메달에 이어 주말리그 왕중왕전 트로피까지 손에 넣게 된다. 이 시점은 김두진이 전학 징계 이후 본격적으로 경기를 뛰게 된 때다.

김두진은 소년체전 결승전에서는 16점 10리바운드, 왕중왕전 결승전에서는 12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큰 힘이 됐다. 

“전학 징계 기간 때, 팀 플레이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코치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이 제 포지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였어요. 제가 없을 때 학교가 준우승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경기를 뛰게 됐을 때 우승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결국 뛸 수 있는 대회 다 우승해서 팀원들한테 많이 고마웠죠.”

그렇게 ‘행복 농구’를 한 명지중 팀원들은 연계 학교인 명지고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김두진도 강호 경복고로 전학을 선택했다. 두 번째 전학 징계, 이 시간은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수비를 해내는 김두진의 능력의 밑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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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안쪽에서만 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밖에서 외곽 수비도 배워야 했어요. 일단 수비가 안 되면 게임을 뛸 수 없기 때문에 궂은 일부터 디테일하게 연습했어요. 어렸을 때는 ‘얘만 막아라’였다면 고등학교 때는 매치를 막다가 다른 수비를 어떻게 도와주는지, 로테이션은 어떻게 돌아야 하는지 같은 전술 부분을 중점으로 배웠던 거 같아요.”

농구의 깊은 부분부터 갈고 닦으며 전학 징계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목 수술을 하게 되며 코트에 나설 수 없었다.

“3학년 초반에 수술하면서 3~4개월 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선생님들은 유급을 권유하셨는데, 1년동안 견딜 자신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재활 열심히 할 테니까 한 번만 믿어 달라고 부모님, 선생님을 설득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김두진은 믿어준 이들에게 증명해냈다. 2022년 주말리그 왕중왕전 부산중앙고와 결선 경기부터 동아고와의 준결승전까지 4경기 연속 20점을 올렸고, 당해 ‘무관’이라 불리던 경복고가 우승하는데 큰 보탬이 됐다. 다양한 이유로 공백이 길었던 청소년기, 김두진은 코트 밖에서 지켜보면서도 늘 ‘내가 있었다면’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김두진의 팀은 늘 그가 합류한 후 우승컵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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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_Life in University

김두진의 선택은 중앙대다. 입학 초기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동계 훈련이 만족스럽게 된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대학 무대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험난했다. 농구 인생의 브레이크를 생각할 만큼 큰 시련이었다.

“리그를 들어가니까 벽을 체감했어요. 친구들이 아니라 형들이랑 부딪히는 거니까 피지컬부터 경험까지 모든게 차이가 났어요. 또 코트 안의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경기 흐름을 이어가는 능력 같은 게 고등학교 때와 너무 달라서 위축도 많이 되고, 감도 안 잡히더라고요. 세 번째 경기 끝나고 나서인가, 많이 무너졌어요. ‘진짜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행착오를 겪고 있던 김두진에게 당시 이중원 코치가 ‘이겨내다 보면 방법이 한 개씩 보인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팀 전체를 살려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김두진은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가 아닌,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플레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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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는 네가 아니어도 팀에 득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네가 잘할 수 있는 수비나 리바운드, 속공 같은 팀 전체를 살려주는 플레이를 많이 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그냥 제가 하려고 했다면, 대학에 와서는 경기 흐름대로 찬스가 나면 제가 공격하고 아니면 팀원들에게 양보해주는 플레이를 많이 배웠죠.”

 

윤호영 감독의 부임 이후 중앙대는 고려대와 연세대를 연달아 격파하며 MBC배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김두진에게 이 때의 기억을 묻자 '아픈 손가락'이라고 답했다. 좋은 기억이지만 개인적으로 안 풀리던 때였고, 결승전을 앞두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4강 때까지 팀에 도움도 안 되고, 들어갈 때마다 마이너스였어요. 평균 출전 시간이 2-3분 밖에 안 됐을 거예요. 들어가면 실수만 하니까요. 그래서 결승 전날에 지금 기회를 못 잡으면 이번 년도는 끝이라고 생각해서, 어렸을 때 우승했던 기억을 계속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 잡았던 것 같아요. 우승할 때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어야 감독님께도, 동료들한테도 신뢰도 받을 수 있고 스스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나선 결승전, 김두진은 10점 11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저학년 때부터 준비하던 수비와 리바운드로 팀을 살려주는 선수 그 자체였다. 경기 초반 연세대 상대로 밀리던 중앙대에게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활약이었다. 

“경기가 잘 풀려서 다행이에요. 그 때 감독님은 물론이고 선수들도 옆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들어가면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줘서 많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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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U리그에 들어서, 중앙대는 리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인터뷰 전날(10일) 경희대와의 맞대결에서 22점차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고 2차 연장 끝에 패하고 말았다. 그것 때문인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을 언급했음에도 김두진의 얼굴에는 이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 드러났다. 그는 지난 7월 MBC배 결승전부터 돌아봤다.

“MBC배 4강 때 손목이 부러졌어요.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 감독님께 수비랑 리바운드만 할 테니까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도 그래주면 팀에 도움이 될 거 같다고 허락하셨는데, 손목이 아파서 공이 안 잡히는 거예요. 그 부상도 이겨냈다면 우승할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어제(10일) 경기에서 복귀를 했는데, 팀에 도움이 되어서 이겼으면 더 뜻 깊은 복귀 경기지 않았을까 싶네요.”

“경희대전을 이겼으면 우승 확률이 높아졌을텐데, 그래도 아직 1등이잖아요. 선수들끼리 지긴 했지만 1등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 경기 다 이기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남은 경기 각오라기보다는, 그냥 무조건 우승하겠습니다."

#003_Application

자신의 목표를 적는 칸, 김두진은 긴 고민을 하지 않고 ‘윤호영 감독님 같은 선수 되기’라는 말을 적어 내려갔다. 그는 롤모델에게 농구를 배우고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감독님 부임하시고 팀 디테일 변화가 많이 생겼어요. 일단 웨이트 같이 몸 만드는 부분에 엄청 몰입을 하셨어요. 저희도 몸이 준비가 되다 보니까 농구도 편해지더라고요. 또 프로에 오래 계셨다 보니까 그 시스템을 가져오셔서 짜임새 있게 농구를 가르쳐 주셨어요. 또 개인 운동을 할 때도 한명 한명 잡아서 세세하게 알려주시다 보니까 동기부여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항상 간결하게 하고 무리하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해 주셨어요. 하고 싶은 것 말고 해야 하는 걸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윤호영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쯤 밑바닥을 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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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영 감독은 선수 시절 동부 산성의 한축을 담당한 KBL의 레전드다. 김두진과 같은 포지션이기도 하다. 그는 이에 대한 존경을 담아, 농구 인생 최종 지향점이 윤호영 감독이라고 답했다.

“가장 끝에 있는 롤모델은 감독님 같은 선수예요. 수비도, 리바운드도 되고 또 공격에서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풀어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제 포지션에서 가장 잘 뛰고, 체력이 좋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가드 수비도 많이 배웠고, 저 스스로 빠른 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앞선 수비도 문제 없어요. 또 포스트업 과정에서 버티는 수비를 잘 한다고 생각해서 저보다 피지컬이 좋은 센터 선수들도 수비할 수 있어요. 리바운드는 물론이고요. 또 요즘 배우고 있는 게 볼 없는 움직임이라 팀원들을 살려주는 움직임도 점점 제 장점으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무엇보다 코트 위에서 적극성은 누구한테도 안 밀린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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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김두진이 가장 우선시하는 건 수비와 리바운드, 공격에서 팀을 살려주는 플레이다. 그는 훌륭한 신체조건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이를 착실히 수행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어떤 농구를 하는 팀이든 필요로 하는 역할이기에, 김두진도 적응력을 어필 요소로 삼았다. 

“당장 제 앞에 있는 목표는 실수가 없는 선수예요. 주어진 임무를 실수 없이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그 다음 임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로에서는 몸을 더 키워서 앞선부터 외국인 선수까지 수비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어요. 어느 팀이나 잘 녹아들 자신이 있습니다. 좋게 봐주신다면,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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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점프볼DB, 양윤서 인터넷기자, 김두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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