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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김종석의 그라운드] "꼭 1등 아니어도 괜찮다"…장호배 못 나간 스승 주원홍, 우승 못 한 두 제자 윤용일…

관리자 각티비 2026-09-17 06:31 6 0
- 고3 때 종별 대회 출전 신청 누락된 주 회장…성적 없어 장호배 초청도 못 받아
- 윤용일은 최고 3위, 이형택은 준우승…훗날 AG 2관왕·한국 최초 ATP 챔피언으로
- "출전 못했거나 우승 못해도 포기하지 말라"6867880_1_a543b9b8.webp제70회 장호 홍종문배 전야제에서 연설하는 주원홍 회장. 테니스코리아

"윤용일, 이형택 선수는 한번 일어나 보세요."

 14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제70회 장호 홍종문배 주니어테니스대회 기념행사. 축사를 하던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이 갑자기 객석을 향해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한국 남자테니스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윤용일 대한테니스협회 미래국가대표 전담감독과 이형택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주 회장은 웃으면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날 역대 장호배 우승자들이 소개됐는데 두 사람은 이 대회 정상에 오른 적이 없어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장호배 우승을 못해서 소개를 못 받은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행사장에서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주 회장이 굳이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운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주니어 시절의 한 번의 우승과 한 번의 패배가 선수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금 코트에 서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6867880_2_eba13598.webp테니스 행사장에서 반갑게 만난 주원홍 회장과 윤용일, 이형택. 채널에이

장호배에 나가지도 못했던 스승

윤용일과 이형택은 주 회장이 삼성 테니스단 감독 시절 직접 지도했던 제자들입니다. 주 회장은 1992년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2008년 삼성증권 감독에서 물러날 때까지 윤용일, 이형택, 박성희, 전미라, 조윤정 등 한국 테니스를 대표한 선수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스승인 주 회장에게는 장호배 출전 경력이 없습니다.

 단순히 성적이 나빠서가 아니었습니다.

 동인천고 3학년이던 시절 중요한 종별대회를 앞두고 학교에서 참가 신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 대회 성적이 없으니 당시 국내 최고 주니어들을 초청하던 장호배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주 회장은 7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일을 스스럼없이 공개했습니다.

 "저는 사실 장호배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종별대회 참가 신청을 선생님께서 하지 못해 경기를 못 했고, 그 기록이 없어서 장호배에도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동인천중과 동인천고를 거친 주 회장의 학력은 대한테니스협회 공식 자료에도 남아 있습니다.

 당시 장호배는 지금보다도 '초청받는 것 자체가 훈장'으로 여겨지던 대회였습니다. 올해 역시 국내외 대회 성적과 주니어 랭킹 등을 기준으로 남녀 각각 16명만 초청됐습니다.

 그러니 고교 마지막 해에 장호배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이 작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 회장의 테니스 인생은 그때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 숱한 국가대표와 세계무대 진출 선수를 키웠고, 대한테니스협회장까지 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장호배에 출전하지 못했던 사람이 많은 선수들을 키웠고, 지금은 대한테니스협회 회장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6867880_3_88ac3a60.webp주원홍 회장이 삼성 감독 시절 윤용일 코치, 이형택과 프랑스오픈이 열린 파리를 방문했다. 테니스코리아

"테니스계의 보배"라고 불러준 장호 홍종문

 장호배에 직접 뛰어보지 못했지만 주 회장과 이 대회를 만든 고 장호(長湖) 홍종문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의 인연은 깊습니다.

 홍 전 회장은 대한테니스협회장을 두 차례 맡아 국가대표 해외 출전을 지원하고 주니어 육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1957년 장호배를 창설했고 1971년에는 사재를 내 장충테니스코트를 건립했습니다. 장충테니스장은 2013년 그의 아호를 따 '장충 장호테니스장'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당시 협회장이었던 주원홍 회장은 이곳을 "테니스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 회장은 홍 전 회장의 생전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늦은 세대이지만 장호 홍종문 회장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를 볼 때마다 '테니스계의 보배'라고 해주셨습니다."

 한 선배의 짧은 칭찬은 후배에게 오래 남았습니다. 주 회장은 그 말이 자신에게 테니스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격려가 됐다고 회상했습니다.

 지금도 주 회장의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실 가까운 곳에는 홍종문 선생과 소강 민관식 선생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주 회장은 지난해 인터뷰에서도 "한국 테니스 발전에 큰 공로를 세운 두 분의 공로를 항상 되새기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장호배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지만 장호가 남긴 정신은 평생 품고 살아온 셈입니다.

6867880_4_6e696a22.webp방콕 아시안게임 2관왕 윤용일. 한국 선수 최초로 ATP투어에서 우승한 이형택.

3위 윤용일, 준우승 이형택

두 제자도 장호배 챔피언은 아니었습니다.

 윤용일은 대구상고 시절 3년 연속 장호배에 출전했지만 최고 성적은 3위였습니다.

 윤 감독은 지난해 장호배를 앞두고 "고교 시절 3년 연속 출전해 3위 한 번이 최고 성적이었다"며 "우수 선수 초청대회였기 때문에 코트를 밟는 것 자체에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나 장호배 3위가 그의 선수 인생 최고 성적은 아니었습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단식과 단체전을 석권해 2관왕에 올랐습니다. 메이저대회 본선에도 진출하며 한국 남자테니스의 세계화에 앞장섰습니다.

 이형택은 정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갔습니다. 봉의고 시절인 1993년 장호배 결승까지 올랐지만 같은 학교 정성환에게 패해 준우승했습니다. 장호배 공식 역사에서도 이형택은 1993년 준우승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주 회장은 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의 특별한 인연도 들려줬습니다.

 윤용일이 단식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고 이형택 역시 단체전 금메달 멤버가 되면서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 회장은 이것이 이형택이 이후 세계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고 돌아봤습니다.

 이형택은 2000년 US오픈에서 16강에 올랐고 2003년 시드니 아디다스 인터내셔널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ATP 투어 단식 정상에 섰습니다. 당시 2회전에서 세계 10위 앤디 로딕을 2-0으로 꺾었고 결승에서는 세계 4위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게 2-1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그날 이형택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던 사람이 스승 주원홍이었습니다.

 주 회장은 "너무 기뻐서 관중석에서 코트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너무 높아서 못 뛰어내렸다"며 웃었습니다.

 이형택 역시 이번 장호배 70주년 행사에서 자신의 준우승 경력을 두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주니어 때 장호배 우승을 못해야 성인 무대에서 잘 풀린다는 징크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6867880_5_642a3310.webp70회 장호배 축하연에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이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테니스 발전에 큰 도움을 준 주원홍 회장의 동생 주원석 미디어윌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도 참석했다. 테니스코리아

지금의 1등이 마지막 순위는 아닙니다

 세월이 흐른 뒤 세 사람은 다시 장호배에서 만났습니다.

 장호배에 출전조차 못했던 주원홍은 대한테니스협회장이 됐습니다.

 장호배 3위가 최고였던 윤용일은 올해 70회 대회 토너먼트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지난해 처음 TD를 맡은 데 이어 2년째 대회 전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준우승자였던 이형택은 한국 최초 ATP 투어 단식 챔피언이 됐고, 올해는 딸 이미나가 장호배에 출전하면서 33년 만에 부녀 2대의 인연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주 회장이 이날 선수들에게 건넨 말은 단순한 격려사가 아니었습니다.

 장호배에 출전하는 것은 분명 영광이지만, 여기에 못 나왔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고 우승하지 못했다고 뒤처진 것도 아니라는 얘기였습니다.

 주 회장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운동하되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함께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라고 당부했습니다. 테니스 기술만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힘도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자기가 말할 기회가 왔을 때 조금 더 긴 문장으로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장호배에도 우승자는 남녀 한 명씩뿐입니다. 누군가는 결승에서 지고 누군가는 첫날 탈락합니다. 전국에는 이 대회 초청장조차 받지 못한 선수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70주년 행사에 함께 선 세 사람의 테니스 인생은 어린 선수들에게 조금 다른 성적표를 보여줬습니다.

 장호배에 나가지 못했던 스승은 한국 테니스의 대표 지도자와 행정가가 됐습니다. 3위에 그친 제자는 아시안게임 2관왕이 됐고, 준우승했던 제자는 한국인 최초의 ATP 투어 챔피언이 됐습니다.

 꼭 지금 1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열다섯, 열여섯 살에 받아든 성적표는 인생의 최종 성적표가 아닙니다. 한 번의 탈락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코트에도 다시 나서는 일입니다. 70년을 이어온 장호배가 올해 어린 선수들에게 건넨 또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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