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축구 [양정훈의 월드컵 현장 관찰기 ⑭] 한국-멕시코전, 의외의 실수가 두 팀이 걸어갈 길을 다르게 했다
<베스트일레븐> 과달라하라(멕시코)-양정훈 칼럼니스트

미디어 참관석 옆자리의 70대 멕시코 노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도 16번 훌리안 퀴뇨네스 움직임은 정말 좋네요." 곧 화답이 돌아왔다. "6번 황인범의 테크닉은 발군이더군요."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선수에게 칭찬을 내뱉은 근거는 물론 첫 경기의 활약상이다.
미디어의 보는 눈과 경기에 직접 나서야 하는 선수단의 보는 눈이 크게 차이가 날 이유가 없다. 그라운드 위 당사자들은 상대 주요 선수와 그 전술적 활용의 대강을 더욱 세밀하게 파헤쳐서 대비하고 나왔을 것이다. 저쪽이 철저히 분석하고 나올 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렇다고 지난 경기에서 유효했던 공격 옵션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일단 시도를 해보고, 잘 먹히지 않을 경우 다른 전략을 꺼내 들면 된다.
큰 틀에서 대한민국과 멕시코도 이런 흐름을 따랐다. 이강인이 공격 추동의 기점이 되어 황인범 등 전방에 가담하는 동료들을 활용해 슈팅 찬스를 만들어 가려는 전개는 1차전 체코와의 경기와 무척 닮아 있었다. 멕시코 역시 1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전과 유사하게 퀴뇨네스 중심으로 포워드들에게 슈팅으로 공격의 마무리를 맡기는 비중을 크게 잡는 방향을 택했다.
두 팀 모두 상대가 1차전의 좋았던 양상대로 플레이를 펼치게끔 가만두지 않았다. 게임 영상을 보고 충분히 파악해서 준비해 온 방어 전략대로 게임 전술을 수행해 나갔다. 의미상으로도, 순위를 가른다는 현실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했던 경기인 만큼 어느 한쪽도 교착 국면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위험 감수'의 행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어디까지나 수비 안정의 기조 아래 공격 전략의 변화를 먼저 주기 시작했다.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앞쪽으로 먼 거리의 긴 패스를 시도한다거나, 파이널 서드에 어떤 형태로든 볼을 투입하면 2선의 선수들이 상대 수비를 돌아 침투한다거나, 페널티 아크 주변에 근접하면 지체 없이 미들슛을 때린다거나,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측면 내부를 공략하는 등 약속되고 계획된, 다채롭고 조직적인 플레이로 멕시코 진영을 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골키퍼 키를 넘기는 킥, 설영우의 왼쪽 측면 포스트를 비껴가는 슈팅 등이 연출됐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공격의 마무리를 슈팅으로 가져간다는 이미지가 원활하게 공유되지는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후반 중반 전광판에 비친 멕시코 6, 대한민국 3. 유효슈팅 수는 공격의 다변화를 꾀한 쪽이 오히려 적게 기록됐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빌드업 과정이 아무리 좋더라도 슈팅을 거치지 않고서는 골이 만들어지지 않고, 나아가 득점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일견 주도권을 쥐고 진취적으로 싸운 모습이었지만,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관점에서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설사 무승부가 됐다 한들 '비겼잘싸'로도 매기기 어렵다.

멕시코는 빠른 스피드로 여러 선수들이 돌진해 들어가며 상대 수비를 뒷걸음질 치게 한 뒤 그 혼란 시점을 공략하는, 곧 지난 남아공전의 두 번째 골과 같은 장면을 대한민국 수비 앞에서는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했다. 경기가 중반을 거쳐 종반으로 넘어갈수록, 무엇보다 개인 전술에 기대를 거는 기색이 역력했다. 골을 예감케 하는 정밀도 높은 찬스는 실로 드물었으나, 결과적으로 선수 개개인에게 강조된 집중력이 결국 이 날의 결승골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 의외의 실수가 승부를 가르기엔 남은 대회 기간 두 팀이 걸어야 할 앞길이 너무나도 크게 엇갈려 버렸다. 월드컵 개최국과 일전을 벌이는 희소한 경험이 대한민국 축구사에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된 점은 무척 아쉽다.

경기장 규모가 작아서였을까? 45,522명의 입장객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한 녹색 저지 차림의 멕시코 홈팬들이었지만, 원정팀이 지옥처럼 느낄 만한 무섭고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홈팬, 응원, 원정' 등 불리함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요소들을 적당히 엮어낸 문구가 패배의 변명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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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참관석 옆자리의 70대 멕시코 노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도 16번 훌리안 퀴뇨네스 움직임은 정말 좋네요." 곧 화답이 돌아왔다. "6번 황인범의 테크닉은 발군이더군요."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선수에게 칭찬을 내뱉은 근거는 물론 첫 경기의 활약상이다.
미디어의 보는 눈과 경기에 직접 나서야 하는 선수단의 보는 눈이 크게 차이가 날 이유가 없다. 그라운드 위 당사자들은 상대 주요 선수와 그 전술적 활용의 대강을 더욱 세밀하게 파헤쳐서 대비하고 나왔을 것이다. 저쪽이 철저히 분석하고 나올 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렇다고 지난 경기에서 유효했던 공격 옵션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일단 시도를 해보고, 잘 먹히지 않을 경우 다른 전략을 꺼내 들면 된다.
큰 틀에서 대한민국과 멕시코도 이런 흐름을 따랐다. 이강인이 공격 추동의 기점이 되어 황인범 등 전방에 가담하는 동료들을 활용해 슈팅 찬스를 만들어 가려는 전개는 1차전 체코와의 경기와 무척 닮아 있었다. 멕시코 역시 1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전과 유사하게 퀴뇨네스 중심으로 포워드들에게 슈팅으로 공격의 마무리를 맡기는 비중을 크게 잡는 방향을 택했다.
두 팀 모두 상대가 1차전의 좋았던 양상대로 플레이를 펼치게끔 가만두지 않았다. 게임 영상을 보고 충분히 파악해서 준비해 온 방어 전략대로 게임 전술을 수행해 나갔다. 의미상으로도, 순위를 가른다는 현실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했던 경기인 만큼 어느 한쪽도 교착 국면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위험 감수'의 행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어디까지나 수비 안정의 기조 아래 공격 전략의 변화를 먼저 주기 시작했다.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앞쪽으로 먼 거리의 긴 패스를 시도한다거나, 파이널 서드에 어떤 형태로든 볼을 투입하면 2선의 선수들이 상대 수비를 돌아 침투한다거나, 페널티 아크 주변에 근접하면 지체 없이 미들슛을 때린다거나,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측면 내부를 공략하는 등 약속되고 계획된, 다채롭고 조직적인 플레이로 멕시코 진영을 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골키퍼 키를 넘기는 킥, 설영우의 왼쪽 측면 포스트를 비껴가는 슈팅 등이 연출됐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공격의 마무리를 슈팅으로 가져간다는 이미지가 원활하게 공유되지는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후반 중반 전광판에 비친 멕시코 6, 대한민국 3. 유효슈팅 수는 공격의 다변화를 꾀한 쪽이 오히려 적게 기록됐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빌드업 과정이 아무리 좋더라도 슈팅을 거치지 않고서는 골이 만들어지지 않고, 나아가 득점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일견 주도권을 쥐고 진취적으로 싸운 모습이었지만,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관점에서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설사 무승부가 됐다 한들 '비겼잘싸'로도 매기기 어렵다.

멕시코는 빠른 스피드로 여러 선수들이 돌진해 들어가며 상대 수비를 뒷걸음질 치게 한 뒤 그 혼란 시점을 공략하는, 곧 지난 남아공전의 두 번째 골과 같은 장면을 대한민국 수비 앞에서는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했다. 경기가 중반을 거쳐 종반으로 넘어갈수록, 무엇보다 개인 전술에 기대를 거는 기색이 역력했다. 골을 예감케 하는 정밀도 높은 찬스는 실로 드물었으나, 결과적으로 선수 개개인에게 강조된 집중력이 결국 이 날의 결승골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 의외의 실수가 승부를 가르기엔 남은 대회 기간 두 팀이 걸어야 할 앞길이 너무나도 크게 엇갈려 버렸다. 월드컵 개최국과 일전을 벌이는 희소한 경험이 대한민국 축구사에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된 점은 무척 아쉽다.

경기장 규모가 작아서였을까? 45,522명의 입장객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한 녹색 저지 차림의 멕시코 홈팬들이었지만, 원정팀이 지옥처럼 느낄 만한 무섭고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홈팬, 응원, 원정' 등 불리함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요소들을 적당히 엮어낸 문구가 패배의 변명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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