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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야구 '이치로의 길' 택한 이정후, 메이저리그 타격왕 도전

관리자 최고관리자 2026-06-20 13:00 146 0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email protected]]

장타 대신 정확성…자신에게 맞는 야구를 찾았다
타율 2위 질주…샌프란시스코의 선택도 빛을 보기 시작

2022년 겨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미국 최고의 선수인 애런 저지 영입에 실패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태어난 저지는 자이언츠 팬으로 자랐지만, 뉴욕 양키스에 남았다. 2023년 겨울 샌프란시스코는 최고의 일본 선수인 오타니 쇼헤이 영입에 실패했다. 오타니는 LA 다저스에 입단했고, 다저스는 일본에서 오는 돈벼락을 맞았다.

궁지에 몰린 샌프란시스코는 저지와 오타니를 대신할 수 있는,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시청률과 입장권 판매를 높여줄 선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선수인 이정후와 계약했다. 이정후를 영입하는 데 쓴 1억3200만 달러는 시장 평가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정후는 팀 내 유니폼 판매 1위 선수가 됐고, '후 리 건스'라는 개인 응원단도 생겼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 응원석을 별도로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약을 주도한 파르한 자이디 단장은 1년이 지나기도 전에 해임됐다. 첫해 이정후는 수비 도중 부상을 당해 37경기 만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2년 차인 지난해는 첫 14경기에서 타율 0.352 3홈런을 기록하며 반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빠르게 약점이 노출됐고, 이후 130경기에서 타율 0.257 5홈런에 그쳤다. 이정후의 2년 차가 끝나자, 밥 멜빈 감독이 해임됐다.

1756983_1_cadc8048.webpⓒReuter연합

메이저리그 진출 후 3년간 이어진 시행착오

올해도 별로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이정후는 겨울 훈련에 매진해 더 단단한 몸을 만들었지만, 첫 48경기에서 타율 0.268 3홈런에 그쳤고 부상까지 당했다. 3년 차인데도 달라진 것이 없자, 현지에서도 강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렇게 이정후는 실패한 계약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열흘을 쉬고 돌아온 이정후가 안타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정후는 부상에서 복귀하자마자 13경기 구간 31안타를 기록했다. 이는 1883년 창단한 자이언츠 역사에서 에드 라우시(1929)와 빌 테리(1930, 1932)에 이어 3번째였다. 둘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들로, 테리는 테드 윌리엄스(1941)보다 11년 앞서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4할 타율을 달성한 선수다. 18경기 연속 안타는 한국 선수 신기록이 됐고, 스즈키 이치로를 제외한 일본 선수의 최고 기록(오타니)과 동률이 됐다.

6월11일 자이언츠는 팀 역사상 두 번째로 8점을 뒤진 상태에서 8회를 시작한 경기를 뒤집었다. 9회말 브라이스 엘드리지(21)가 메이저리그 역대 최연소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기 직전, 안타를 때려내 무사 만루를 만든 선수는 이정후였다. 6월15일 이정후는 결정적인 수비로 팀과 팀의 에이스인 로건 웹을 구했다. 현지에서는 더 이상 이정후를 실패한 계약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정후는 무엇이 달라진 걸까. 부상 기간 이정후는 새로운 피칭 머신을 가지고 스트라이크와 볼을 골라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돌아온 이정후는 선구안이 크게 향상됐고, 존을 벗어난 공에 방망이를 내 약한 접촉을 만드는 나쁜 습관을 고쳤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는 마음가짐에서 나타났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타자가 있다. 스윙을 크게 하는 타자와 스윙을 짧게 하는 타자. 스윙을 크게 하는 타자는 스윙 길이가 길어지는 대신 배트 스피드가 빨라져 타구를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다. 3번의 홈런왕에 빛나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가 그렇고, 일본의 홈런왕 무라카미 무네타카(시카고 화이트삭스)도 그렇다. 반면 배트 스피드를 포기하고 스윙을 짧게 하면 파워가 감소하는 대신 정확성이 높아진다. 3년 연속 팀을 바꿔가며 타격왕을 차지한 루이스 아라에스(샌프란시스코)가 대표적이다.  

스윙이 짧으면서도 배트 스피드가 빠른 타자도 있다. 지난해 56개 홈런을 날려 55개를 친 오타니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홈런왕이 된 카일 슈와버(필라델피아)다. 반면 이정후는 슈와버와는 정반대로, 길고 느린 스윙을 가지고 있다. 이정후는 배트 스피드가 하위 7%인데, 스윙 길이가 상위 15%로, 배트 스피드가 상위 3%인 슈와버와 스윙 길이가 같다.

이런 스윙은 한국에서는 최적화된 스윙이었다. 공을 잘 보기 위해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를 하는 이정후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앞발을 모은다. 그 순간 방망이를 잠깐 멈추는데, 중간에 한 번 끊기고 나가다 보니 타구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스윙을 더 길게 해야 한다. 이정후는 스윙을 한 번 멈추는 대신 정확성을 얻었고, KBO리그 통산 타율 1위 선수가 됐다. 

1756983_2_e2f9ab4e.webp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 ⓒReuter연합

MVP보다는 팀에 도움 되는 선수 되기로 

그러나 이정후의 스윙은 훨씬 빠른 공과 더 변화가 심한 공을 던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길고 느린 스윙으로 강하게 치면, 2루수 앞으로 가는 빠른 땅볼이 되거나, 외야수의 키를 넘기지 못하는 뜬공이 됐다. 이정후도 자신의 스윙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 진출 직전 변화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변화 없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정후의 스윙이 달라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갑자기 성과가 나는 이유는 자신의 스윙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장타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한국에서도 홈런 타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큰 계약을 받은 탓에 장타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그러나 이제 이정후는 장타를 욕심내지 않는 대신 정확한 콘택트를 추구하고 있다.

이정후의 롤모델은 스즈키 이치로다. 이치로는 일본에서 홈런을 제법 쳤던 선수였지만, 미국에서는 단타 머신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치로의 노선을 택하기엔 지금 이정후의 시대는 장타를 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과거 이치로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이정후가 마음을 고쳐먹게 된 데는, 홈런 타자 출신이었던 타격코치가 정확성을 강조하는 코치로 바뀌고, 특히 아라에스가 팀 동료가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정후는 짧은 안타를 치면서도 충분히 제 몫을 다하는 아라에스를 보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장타를 치지 못하면 MVP가 될 수 없다. 타격왕이 높게 평가된 건, 이치로가 타율 1위를 하고 MVP가 된 25년 전(2001)에나 가능했다. 하지만 이정후는 MVP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기로 작정했다.

2019년 류현진은 일본 투수들도 하지 못한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했다. 반면 타자 쪽에서는 아직 비슷한 업적을 만든 선수가 없다. 추신수는 충분히 훌륭한 타자였지만, 주요 타이틀은 따내지 못했다. 현재 이정후는 오토 로페스(마이애미)에 이어 메이저리그 타율 2위를 달리고 있다. 

과연 이정후는 한국인 최초이자, 이치로에 이어 아시아 선수 두 번째로 타격왕이 될 수 있을까. 설령 타격왕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성과를 이어간다면, 자이언츠는 이정후와의 계약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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