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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조국이 힘들 때마다 나섰다”…재일동포, 한국 스포츠·경제를 떠받친 80년

관리자 각티비 2026-09-17 16:02 4 0
6884793_1_241a5a28.webp1948년 6월 26일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이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런던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스포츠경향 김세훈 기자]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32년 만에 일본에서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막을 올린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스포츠와 경제 발전의 중요한 순간마다 힘을 보탰던 재일동포들의 발자취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광복 이후 약 80년 동안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어려움을 견뎌야 했던 재일동포들은 대한민국이 힘든 시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을 지원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수출산업공단 조성, 신한은행 창립, 1997년 외환위기 극복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이들의 지원이 있었다.

한국 스포츠가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딛던 시기에도 재일동포들의 역할은 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은 태극기를 앞세워 참가한 첫 올림픽이었다. 재정이 넉넉지 않아 국내에서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해 67명의 선수단 참가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선수단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배편으로 일본 후쿠오카에 건너갔다. 이후 요코하마와 상하이, 홍콩, 인도, 카이로, 로마 등을 거쳐 20여 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재일동포들은 요코하마에 도착한 선수단에 64만9500엔의 성금을 전달했고, 동포 여성들은 직접 태극기를 새긴 유니폼도 준비했다.

한국전쟁 중 열린 1952년 헬싱키올림픽 때는 1000만엔을 모금하고 유니폼과 경기용품을 지원했다. 이를 계기로 1953년 재일본대한체육회가 정식 출범했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과 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재일동포들은 선수단의 숙식과 수송, 통역 등을 도왔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동포 경제인 등이 약 1억5000만엔을 모아 한국 선수단을 지원했다. 남은 후원금은 국내 응원단 3489명이 일본에서 올림픽을 관람하는 데도 쓰였다.

지원 규모가 가장 컸던 무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재일동포 사회는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벌였고, 부인회도 ‘하루 10엔씩’ 모금에 나섰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약 100억엔, 당시 환율로 약 540억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 한 해 예산 약 21조원의 0.26% 수준이다. 같은 비율을 2026년 국가 예산에 단순 적용하면 약 1조9000억원 규모다.

성금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과 수영경기장, 테니스장, 88올림픽회관, 미사리 조정경기장 등 시설 조성에 활용됐다. 대회 뒤 남은 성금 가운데 210억원은 서울올림픽파크텔 건립 재원으로 쓰였다.

부인회가 7년 동안 모은 성금 일부는 경주 불국사 등 전국 주요 관광지 14곳의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는 데도 사용됐다. 서울올림픽을 찾는 외국인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6884793_2_5d5cf2d6.webp1988년 9월 30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 재일동포 기부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 현장 사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대회가 끝난 1988년 10월 올림픽공원에 재일동포들의 기부를 기리는 기념비도 세웠다.

지원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재일동포와 일본인이 함께하는 공동 응원단이 꾸려졌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약 2000명 규모의 재일동포 응원단이 한국을 찾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재일동포 사회는 2억엔을 기부했다.

한국 야구에도 재일동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56년 시작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의 고국 방문은 당시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야구 기술과 장비를 소개하는 통로였다. 이런 교류는 한국 야구의 저변 확대에도 힘을 보탰다.

재일동포의 기여는 스포츠를 넘어 여러 분야로 이어졌다.

1950~60년대 일본 내 한국 공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재일동포들의 사재 출연이 이어졌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해외 공관용 부동산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동포 사회가 외교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탰다.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도 재일동포 자본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초 재일동포 기업인들은 수출산업공단 건설을 제안하고 직접 투자에 나섰다. 1966년 구로공단 초기 입주기업 28곳 가운데 18곳이 재일동포 투자기업이었다.

금융사에도 이름을 남겼다. 1982년 재일동포 주주 341명이 자본금 250억원을 출자해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6884793_3_4031a9d9.webp1982년 7월 2일 일본 도쿄 민단중앙본부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 재일한국인 후원회’ 결성식(발족식) 장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을 중심으로 ‘한 가정 10만엔 본국 송금 운동’이 펼쳐졌다. 외화 송금 등을 통해 한국의 외화 확보에 힘을 보탰다.

지역사회 발전에도 지원이 이어졌다. 제주 감귤 산업 성장 과정에서 일본에서 들여온 묘목과 재배 기술이 영향을 미쳤고, 학교와 교육시설 건립에도 재일동포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한국전쟁 때는 돈이 아닌 목숨을 내놓은 이들도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 살던 재일동포 청년 약 600명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 등 주요 전선에 투입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재일동포 1세대와 2세대의 역사는 단순한 ‘재외동포의 지원’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조국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것인가보다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했던 세대였다.

재일동포 3세인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은 이를 ‘Original Korean’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최 회장은 “재일동포들은 재외동포를 뜻하는 ‘Overseas Korean’으로 살아가며 늘 뿌리를 갈망해왔고, 조국의 당당한 정체성을 지닌 ‘Original Korean’이라는 자긍심을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2의 고향인 나고야에서 열리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단순한 스포츠 승부를 넘어 재일동포들이 광복 이후 80여 년 동안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의 체육과 국가 발전에 기여해온 역사를 다시 확인하고 그 자긍심을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세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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