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축구 "내 오빠는 세계 최고가 될 거야" 15세에 세상 떠난 여동생과의 약속...'세계 최고 유망주' 코트디 에이…
출처:디오망데 SNS(MHN 오관석 기자)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공격수 얀 디오망데가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향한 가슴 아픈 편지를 공개하며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글로벌 축구 매체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은 지난 18일(한국시간) 디오망데가 여동생 록산에게 보내는 편지를 게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프로 선수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여동생의 죽음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디오망데는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 성장했다. 어린 시절 가족과 친척 등 25명이 한집에 모여 살았고, 밤이 되면 몰래 TV를 켜놓고 축구 경기를 보며 프로 선수를 꿈꿨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우리는 부자인지 가난한지도 몰랐다. 그저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축구를 향한 열정은 남달랐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유소년 아카데미 생활을 시작했고,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친구들과 감자를 훔쳐 먹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맛있는 감자는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디오망데는 언어와 문화 차이 속에서도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유럽 구단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번번이 계약에 실패했다. 그는 "첼시, 본머스, 크리스탈 팰리스 등 여러 구단에서 훈련했지만 모두 나를 원하지 않았다.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출처:연합뉴스/로이터결국 비자 문제로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했던 그는 축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의 레가네스와 계약하며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디오망데는 레가네스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비보를 접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귀찮게 여기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여동생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들은 아무런 완곡한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냥 '네 여동생이 죽었다'고 말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파티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음료에 무언가를 넣었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여동생은 겨우 15세였다"고 고백했다.
출처:연합뉴스/로이터디오망데는 지금도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질투 때문이었는지, 우리 나라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지켜줄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여동생의 죽음 이후 디오망데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경기장은 내가 집처럼 느끼는 유일한 장소다. 축구장에서 하는 모든 것은 여동생을 위한 것이다. 골을 넣을 때마다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디오망데는 19세의 나이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에콰도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기회 창출 5회, 드리블 성공 4회, 크로스 성공 1회, 볼 경합 성공 11회 등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출처:디오망데 SNS그는 월드컵을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닌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여동생에게 바치는 무대로 바라보고 있다. 디오망데는 편지 말미에서 "우리는 결국 해냈다. 나는 이제 드로그바, 야야 투레, 제르비뉴처럼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선수로 월드컵 무대에 선다"며 "여동생은 늘 내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더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화를 갖기도 전부터 여동생은 사람들에게 '내 오빠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나는 여동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그러다 죽게 되더라도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디오망데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조국이 12년 만에 밟은 월드컵 무대에서 그는 자신이 왜 유럽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지 증명하려 한다. 동시에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줬던 여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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